1930년대 중반의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었다. 당시 일본 오사카의 풍속을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절기에 따라 시대의 가장 아름다움을 즐기는 당시 오사카인들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당시의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로 상대적으로 여유와 자기들만의 안위를 고민하는 저들의 삶과 비교되어 안타까웠지만. 어둠과 밝음의 대비였을까.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어쩌면 풍족함이 넘치고 여유가 있는 지금의 우리시대에 와서 제대로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오사카의 몰락한 명문가 집안의 네자매의 이야기다. 가장 중심인 인물은 둘째인 사치코이고, 사치코와 남편 데이노스케는 셋째 동생인 유키코를 시집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남성들과 선을 보게 된다. 유키코의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좀처럼 속마음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직접적인 분량도 적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결국 둘째네 가족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는 맞선을 그냥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집안끼리의 혼사로 보기에 좀 더 자세한 뒷조사와 신중함. 그리고 감정의 이어짐보다는 무난하고 느낌이 나쁘지 않으면 결혼으로 성사될 수 있다는 것. (지금의 감성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절차이지만.)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정이 가는 인물은 사치코의 남편인 데이노스케였다. 소설의 초반에는 그 존재가 크게 부각이 되지 않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 아저씨의 온화한 성품과 책임감있게 집안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크게 생색내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처제들의 일에 진심이고 강압적이지 않고 현명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한다. 절기마다 경치 좋은 곳으로 가족들을 데려가고 와이프의사소한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꼼꼼하게 들어주고 처리해준다. 상대를 크게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절충안을 제시할 줄도 안다. 이런게 정말 내가 닮고 싶은 현명한 어른의 모습. 그래서 가장 크게 매료된 인물이다. 분량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데이노스케는 소설을 덮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실제도 내 주변에 이런 성품의 사람이 있다면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일 거 같다.

오랜만에 읽은 호흡이 제법 긴 장편소설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감상문을 쓰는 소설이다. 그동안 일 때문에 한동안 작품을 감상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에 소홀했지만 돌이켜보니 굉장히 낭비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느낀 감정을 세세하게 남겨놓는 것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깨달았달까.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짧을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감상을 남기는 일을 이제부터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자신은 없지만 소중한 나의 블로그에.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감상문도 나쁘지 않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