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1.25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8)

벤자민 버튼 (브래드 피트)의 삶은 조금 특별합니다. 그의 외모는 태어날 때 이미 80대 노인의 얼굴이었지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갓태어난 아이의 외모또한 끔찍했기 때문에 벤자민의 친아버지는 아이를 버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버려진 곳은 양로원이었지요. 이미 날 때부터 노년의 모습인 벤자민의 외모는 비슷한 외양의 노인들로 가득한 양로원에서는 그리 특별한 모습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벤자민은 겉모습만 다를 뿐 그의 내면은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전에 읽었던 소설 <막스 티볼리의 고백>과 비슷하지만 영화의 원작은 <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벤자민은 외모의 시계만 거꾸로 되어있을 뿐 그의 성장은 우리의 성장과 비슷합니다. 그 역시 순진한 상태에서 멋모르고 첫경험을 했고 서투르고 허무한 추억을 남긴 첫사랑이 있었고 평생에 걸쳐 사랑한 연인 데이지 (케이트 블란쳇)가 있었죠. 시간의 순서에 역행하는 삶을 산 벤자민이지만 그의 인생행로는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전인류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하 수상한 시절의 여느 젊은이처럼 그도 전쟁을 겪었고 동료들을 잃었죠.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그만 바라보는 연인이 있습니다. 이런 벤자민의 삶은 불행하기만한 것일까요?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특별한 사람은 벤자민의 마지막 사랑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데이지입니다. 그녀는 벤자민을 평생에 걸쳐 사랑하고 결국 그와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벤자민의 특별한 운명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되는 여인이죠.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는 벤자민을 추억하며 그녀의 딸에게 벤자민의 일기를 읽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기를 통해 특별했던 한 남자의 범상치 않았던 인생을 만나보게 되지요.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야 하는 벤자민은 우리의 염려와는 다르게 내적인 갈등을 별로 겪지 않습니다. 그는 이 기구한 운명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숙명론자라고나 할까요. 그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우리와는 다른 모래시계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영혼을 팔아 악마와 거래하여 영생을 보장받지 못한 이상, 반드시 죽게 돼있죠. 하지만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지만 벤자민의 운명의 시간은 그 끝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의 삶은 그가 태어났을 때의 외모와 엇비슷한 80여년의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소중한 이들과의 의도적인 이별도 해야만 했지요.


인생에 꼭 따라오는 말이 있지요. 바로 상실감과 허무함이요. 이 영화도 역시 그런 점을 놓치지 않는군요. 이 영화는 조금은 다른 운명의 시간에 따라 살아간 한남자의 인생을 반추하는 영화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삶의 방식은 누구나 다르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보편적인 경험들이 있죠. 상실과 이별, 그리고 외로움과 성장이란 것을요. 우리도 언젠가 벤자민처럼 소중한 이들을 하나둘 먼저 떠나보내야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별이 예정돼 있고 더 많은 만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다 예기치 않은 이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죠. 운명의 시간은 제각각이지만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마주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확실히 브래드 피트는 배우로서 성장을 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전생애를 연기한 그에게서 어색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노년의 외양에 수줍음 많은 내면을 가진 청년의 모습과 인생 최고의 절정기를 맞은 젊은이의 모습까지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냅니다.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 팬들 사이에서는 일명 케마님이라 불리는 분답게 잡티하나 없는 관리받는 얼굴로 20대의 데이지부터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까지 그 헤아릴 수 없는 연기 내공을 깔끔하게 보여줍니다. (아. 케마님이랑 펜팔친구 하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코멘트, "데이비드 핀처가 돌아왔습니다.!!" 영화에 간간히 녹아있는 핀처 특유의 센스가 반가웠습니다. 진중한 유머를 곁들인 벼락맞은 영감의 갖가지 사연들. 이 영화에서 제일 센스있는 부분이었고 이 영화가 정말 핀처의 작품이 맞구나라고 다시한번 그 출처를 곱씹을 수 있는 장면이었죠. 그의 전작 <조디악>에서는 음울한 분위기는 좋았지만 핀처 특유의 멋을 많이 죽인 영화라 별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세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다시보고 싶은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