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늘 쳇바퀴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이 된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어간다.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사람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난 다를 것이라고. 시간은 쓰기 나름이라고. 나에게 1시간의 시간이 주어져도 낭비없이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얼마나 즐길 게 많은데, 얼마나 할 게 많은데 그 시간들을 저렇게 계획없이 쓰는 걸까. 난 다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라고 별 수 없다는 게 나의 깨달음이다. 피곤에 지친 몸, 조금이라도 일찍 뉘이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믿게 됐고 계획과는 다르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다. 그 사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 나의 곁을 스쳤는지 아둔한 나는 깨닫지 못한다.

일기를 전혀 쓰지 않는 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해도 일주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 못한다. 시간의 무덤에 내 기억과 일상을 고스란히 묻어버리고 있다. 숨가쁘게 달려가는 일상에 젖어 있다가 문득 깨닫는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린 걸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잠시 멈춰서 내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난 사치라 여기고 있었나보다. 나 스스로에게 그런 일상의 작은 쉼마저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에게 그런 시간을 줄 것인가. 안타깝다. 벌써 이렇게 지나왔다. 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누구를 알았고 누구를 놓쳤는지.

마종기님은 일상 속에서 보고 느꼈던 감정과 아쉬움, 설렘들을 시의 언어로 기록해 놓았다. 시 안에 숨겨 놓은 그의 일상 속 깨달음들에 대한 술회가 고스란히 이 책 한권에 담겨 있다. 치열했을 것 같고 숨가빴을 것 같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담았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의 삶은 시를 통해 그의 시를 읽는 많은 독자와 함께 공유되고 있다. 더 이상 일상이나 삶에 대해 신비함이 없을 거라 여긴 노년의 눈을 통한 자연의 경이로움, 사람 관계와의 아쉬움, 결국 사람이란 나이와는 상관없이 늘 비슷한 고민과 아쉬움을 옆에 두고 사는가 보다.

하지만 소망한다. 나에게도 그처럼 맑은 눈이 있기를. 무심코 지나온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보기를. 아름답다 여기기를.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희망을 유치하다 여기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소망하기를. 믿음이 있기를. 닮고 싶다.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글에 담은 아름다움을. 내 삶이 잠시 누군가에게 빌린 인생이라 믿게 된다면 이렇게 허투루 낭비하며 버려지는 일상을 살지는 않을 텐데. 좀더 신중하게 나를 바라보고 주변을 소중하게 담은다면 내 인생, 조금은 향기나지 않을까. 그런 믿음을 얻었다. 감성적인 언어로 쉬운 듯 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들이었지만 작가의 해설과 함께 읽어보니 오히려 친근하지만 더 깊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한 일상을 이런 언어로 쓸 수 있다는 건, 역시 시인의 언어는 다른가 보다.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질투해 본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의 말 / 마종기님.-
마빈
Book 2010/07/29 16:21

친절한 킬러 덱스터 * 제프 린제이

친절한 킬러 덱스터는 제목과는 다르게 절대 친절하지 않다. 입가엔 가식을 띄고 속으로는 인간에 대한 조롱을 품고 오늘도 평범하고 조금은 어리버리한 인간을 연기하며 사이코패스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취미이자 유일한 흥미인 살인을 마이애미를 부유하는 인간 쓰레기들을 처리하는데 열심히 봉사중이다. 물론 나라의 녹을 먹는 경찰서의 혈흔분석가로서도 맹활약 중이시지만.

책을 읽으며 드라마 덱스터 시즌 4를 막 끝낸터라 드라마의 음울한 시즌 결말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인간 덱스터에 대한 연민을 품는 사치를 범했다. 그동안 내가 알아온 덱스터는 이렇게 동정적인 인간이 아닌데. 상처와는 안드로메다급 거리를 갖고 있는 "괴물"인데. 왜 그렇게 불쌍하고 안돼 보였을까. 드라마에서 덱스터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에게 가정을 꾸리고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깽이같은 아이들과 알콩달콩 사는 것은 맨손으로 연기를 잡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나보다. 그에게 닿을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요원한 일들.

인간을 누구보다 조롱하고 비웃는 덱스터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이고 싶어하는 인간 아닌 인간, 덱스터는 그렇게 조금씩 인간이 느끼는 상처에 다가가고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을 연기하며 조금씩 인간과 닮아가고 있다. 어찌보면 소설 덱스터는 완성되지 못한 한 인간의 자아찾기이며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덱스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숙해 가고 독특한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해 가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고 분석한다. 얄궂을 정도로 체계적인 습득을 하며 평범한 겉모습에 회색빛 일상을 덧칠하려는 남자. 그런 덱스터는 늘 험한 사람들과 경계를 두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발을 잘못 디디면 바로 사냥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인생. 좋은 직장.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 그가 위장한 평범한 겉모습 속에서 보란듯이 위장된 행복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런 겉모습 속에도 주체할 수 없는 살인 본능을 품고 있다.

검은 승객이 인도하는 그곳에는 덱스터의 밤사냥감이 있고 그는 시즌이 거듭 될수록 아니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더 강력해지고 영악해진다. 덱스터가 맺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들이 복잡해질수록 소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또한 더해진다. 아이들 눈치 보랴, 한창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마눌님 진정시키랴. 남부럽지 않은 직감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경찰서가 덱스터의 직장이다. 그들보다 한발 앞서가야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밤사냥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덱스터가 갖는 캐릭터적인 색깔은 점점 뚜렷해지고 진해진다.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덱스터가 깨닫고 이해하게 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감정들을 쓰게 곱씹어 볼 수 있는 것이 덱스터 소설을 읽는 백미다.

 

마빈
Book 2010/07/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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