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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11 핑거포스트,1663 * 이언 피어스 (2)

프란시스 베이컨의 ‘우상론’에 바탕을 둔 이 소설은 역사추리소설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추리외에 철학, 의학, 수학, 과학, 신학이 골고루 섞여있는 장르종합선물세트이기도 하다.

17세기 영국은 혼돈의 시대였다. 영국의 통치자인 찰스1세의 폭정은 백성들과 의회를 분노케하고 종교갈등도 심화된다. 결국 의회파에 진 찰스1세는 처형되고 권력을 잡은 크롬웰은 혼란한 정국을 독재정치로 다스린다. 이 역시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크롬웰이 죽자 공화정도 막을 내리고 망명한 찰스2세와 왕정파에 의해 왕권복고가 이루어진다.

소설의 시간적배경은 17세기, 좀 더 자세히 말하면 1663년이며 공간적배경은 옥스퍼드이다. 어느 날 저녁 옥스퍼드의 뉴칼리지의 성직자이며 학자이기도 한 그로브 박사가 살해되고 범인으로 사라 블런디라는 젊은 여인이 체포된다.

그리고 20년 후..

이 사건은 당시 영국을 여행하던 이탈리아의 신사 마르코 다 콜라와 왕당파 반역자의 아들 잭 프레스콧, 옥스퍼드 대학의 기하학교수 존 월리스, 사학자인 앤소니 우드에 의해 회고된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두고 네 명의 증인들은 각자 다른 말을 한다. 진실처럼 보였던 것이 다음 사람에 의해 거짓이 되고 다음 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했던 부분이 그 다음 사람에 의해 부정된다.

시장의 우상 - 마르코 다 콜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콜라는 집안사정으로 영국에 왔음을 밝히면서 사라 블런디 사건을 증언한다. 옥스퍼드에 온 그는 식당에서 우연히 글로브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던 그녀를 보게 되고 동정심에 병에 걸려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던 그녀의 어머니를 치료해 준다. 이 책이 재미있고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바로 각 챕터의 제목으로 사용된 베이컨의 우상론이다. 이건 일종의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우상론에 맞춰서 글을 읽으면 얘기가 훨씬 재밌어진다. 콜라의 증언이 범한 오류는 우상론중 ‘시장의 우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간이 언어의 잘못으로 인해 빠지게 되는 편견이다. 언어가 존재한다고 그것이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인데 가령 상상속에나 존재하는 것들, 인어공주나 용왕, 해태,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콜라의 증언은 뒤의 다른 증인들과는 다르게 객관적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건 콜라가 한간에 떠도는 소문, 가령 “사라 블런디가 범인이라던데 그 말이 사실이라더라..”라는 식의 말만 듣고 그대로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동굴의 우상 - 잭 프레스콧

반역자의 아들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자 편협함과 아집의 극치를 보여주는 우물안 개구리같은 인물이다. 우상론중 ‘동굴의 우상’에 해당하는 그는 분명 자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문제들을 엉뚱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야비함을 보여준다. 뻔뻔스럽게 사라를 강간하고도 그 잘못을 사라에게 뒤집어 씌우는 못된 인간이다. 반역자인 아버지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 또한 그의 이기주의적인 성격에서 나온 생각으로 나중엔 그것이 진짜 진실인냥 믿어버린다. 물론 진짜 진실은 뒤에가서 밝혀지지만.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믿어버리며 그 판단에 어긋나는 사실들은 절대로 인정하려하지 않는 인물이다.

극장의 우상 - 존 월리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자 저명한 암호 해독가로 활동하던 그는 그로브 박사를 죽인 진짜 범인은 콜라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그는 우상론중 ‘극장의 우상’을 범하는 인물로 처음부터 잘못된 원칙을 세워놓은데서부터 우를 범하게 되는 인물이다. 극장의 우상이 권위있는 자의 말이나 학설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데서 저지르는 인간의 편견을 가리키는 것처럼 그 역시 콜라가 범인이라고 단정짓고 그 원칙을 검증없이 진실인냥 믿어버린다. 자신이 주장하는 생각과 맞지 않는 말과 상황은 무조건 무시하고 그 원칙에 맞게 진실을 왜곡한다. 모든 잘못은 콜라에게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증언은 추측과 억측일뿐 진실은 아니다. 아마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핑거포스트 - 앤소니 우드

앞의 세명의 증인에게 언급될 땐 별로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 인물로 스쳐지나가는 등장인물에 불과한 그가 이 사건의 진실을 말하며 베일에 쌓여있던 의혹들은 그의 증언을 통해서 해소된다. 핑거포스트가 의미하는 것처럼 그는 독자를 진실로 안내하는 안내자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인간이기에 증언을 통해 그의 이기심을 드러낸다. 그는 증언을 통해 악한 사람이 아님을, 끝까지 진실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했었노라 회고하지만, 진실을 밝히고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핑거포스트의 역할을 하는 그 역시도 20년전 그 사건에 관련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잘못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담담하게 진실을 적어가는 그였지만 가족의 안위와 명예를 위해 정의를 저버린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은 역사추리소설을 즐겨읽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픈 책이다. 치밀한 짜임새와 인간에 대한 세심한 고찰이 녹아있는 책으로 근래에 읽어본 역사추리소설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가인 이언 피어스를 이렇게 뒤늦게 알게된 게 아쉽고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움베르토 에코를 좋아하는 탓에 ‘장미의 이름’을 서평에 언급하여 혼란을 줬던 건 아쉬웠지만 굳이 그와 견주어 말하지 않아도 핑거포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책이다. 분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서점에 갔을 때 당신이 이 책을 그냥 지나친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