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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02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이치카와 다쿠지

1년 전 죽은 아내는 저와 아들 유지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의 계절 6월이 돌아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와서 저와 유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꼭 확인할 거라고요.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비의 계절 6월, 약속처럼 그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와 유지 곁으로..

하지만 그녀는 떠나면서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더운 게 영 질색이라 비의 계절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겠다고요. 우리와 다시 만난 아내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와 그녀의 소중한 추억들.. 그녀가 죽었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아들 유지가 있었다는 것도요. 하지만 게의치 않습니다. 그녀에게 저의 부족한 기억력을 더듬어서라도 하나하나 다 설명해 줄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그녀와 저를 반반씩 닮은 아들 유지와의 추억도요. 우리가 그 잉글랜드 왕자님을 얼마나 기다렸고 얼마나 소중히 생각했었는지요.

그녀가 죽고 나서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나약한 저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홀아비 티를 낸 적도 있지만요. 대단한 건 아니고 여름인데도 겨울양복을 입고 있었다는 거, 아들 유지는 엄마없는 티가 너무 나서 미안할 지경입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저와 아들 유지에게는 그렇게 컸던 모양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을 본 아내는 많이 놀란 눈치지만요. 그녀에게 1년 전 그녀가 죽었다는 얘기와 다시 돌아간다고 했던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이대로 아내와 저 그리고 유지 셋이서 함께, 그전처럼 살고 싶습니다. 또 다시 아내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전 남들보다 많은 불편함을 갖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육상선수로 건강한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 저에게 여러가지 불편함들이 찾아왔습니다. 전 엘리베이터도 못타고 자동차도 기차도 못탑니다. 비행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관에도 못들어갑니다. 높은 데도 딱 질색이고요. 이런 저의 불편함들을 감수하고 저와 결혼해 준 아내에게 무척 고맙습니다. 아들 유지를 낳아준 것도요. 저보다 아내 미오를 더 많이 닮은 것도요.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아내에게 조금씩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자꾸 설레이는 기분이 드는 게 아직도 저는 그녀를 많이 사랑하는가 봅니다. 물론 그녀는 아직 저를 낯설어하지만요.

하지만 시간은 계속가고 비의 계절도 끝나갑니다. 예정된 헤어짐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녀를 죽은 사람들의 별 '아카이브'로 다시 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아들 유지에게 말해 놓은 것처럼 저와 유지가 그녀를 잊지않고 소중하게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저 '아카이브'별에서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가야지요.

호수 역에서, 분명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나의 멋진 미래를 안고서.

기다려주세요, 나의 도련님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미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