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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7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 메리 앤 셰퍼, 애니 배로우즈 (12)

때론 장난스럽지만 무지무지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마실 가는 블로그 두군데서 이 책의 감상을 읽었고 스토킹(?)하는 블로그에서는 아주 지적인 서평으로도 만나본 책이라 이젠 좀 읽지그래?라고 닥달하는 다른 책들보다 우선적으로 읽어보기로 마음먹은 책이다. 그런데 지인들에게 이 책 제목을 설명해주려는데 제목이 자꾸 '건지...'에서 막히지 뭔가. 하지만 느낌으로 이 책은 분명 나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저 바다를 바라보는 저 여인의 뒷모습, 그야말로 그 섬에 가고 싶게 만드는 포즈가 아닌가.

건지섬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는 채널제도에 있는 섬으로 지리적으로는 프랑스와 더 가깝지만 영국령의 작은 섬이다. 이 책을 읽고 건지섬으로 검색해서 구글을 떠돌아다니며 사진구경에 여념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빅토르 위고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집필작업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섬으로 작가 메리 앤 셰퍼는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메리 여사는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이 사랑스러운 소설은 메리 여사님의 유작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유작이 되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희망이 넘치는 소설인데.

낯설고 조금 우습기까지 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2차대전의 상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건지섬 사람들이 급조해서 만든 문학클럽이름이다. 독일군 점령당시 고기가 귀했던 시절 마을사람들끼리 돼지고기를 몰래 먹다가 독일군에게 들키게 된 후 엘리자베스의 임기응변으로 만들어진 문학클럽이다. 물론 섬사람들은 그전까지는 책과는 거리가 먼 소시민들이었다. 셰익스피어가 뭐고, 찰스 램이 대체 누군가. 그들에게 이 대문호들은 그저 "듣보잡"이었을 뿐. 하지만 설마가 진짜가 되면서 문학에도 눈을 뜨게 되고 어수선한 전쟁분위기 속에서도 문학에 기대 시대를 견딜 수 있었다. 그들에게 문학은 수용소로 끌려간 친구의 생존에 희망을 걸 수 있었던 힘이었고 영국본토로 피난시킨 아이들을 기다릴 수 있게 해주었던 믿음이었다.

영국 남단의 작은 섬 건지사람들과 편지글을 주고받던 당찬 여류작가 줄리엣은 애정이 듬뿍 담긴 우정의 편지들을 계기로 건지섬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편지로만 주고받던 사람들과 이웃이 되고 친구과 되어 그들과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는 참 따수운 이야기다. 2차 대전당시 독일침공의 상흔이 남아 있는 건지섬 사람들은 줄리엣에게 아주 가까웠던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엘리자베스는 특별했다. 사려깊었지만 용감했고 독일군과 사랑에 빠진 비운의 여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도망친 소년을 숨겨주었다가 독일군에 발각되어 결국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엘리자베스와 크리스티안이 세상에 낳은 아기 "키트"는 어떤 아기보다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부모의 비극을 알기에는 어리디어린 작은 아이일 뿐이다. 줄리엣은 키트와 함께 지내면서 아이에게 모성애마저 느끼게 된다.

건지섬 사람들은 전쟁 당시 건지섬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줄리엣에게 들려주지만 이 소설은 결코 우울하지 않다.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희망적인 현재를 있는 그대로 줄리엣에게 보여주고 있으니까. 게다가 톡톡 튀는 줄리엣의 매력 덕분에 소설은 때론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줄리엣을 보며 언뜻 제인 오스틴의 "엠마"가 생각나기도 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예리한 날카로움을 보여주는데 비해 스스로의 애정사에는 그토록 무디다니. 뒤늦게 친한 친구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아니 인정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도도하지만 사랑스럽던지. 

이 책은 이야기를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들에게는 그 진심이 통할 수 있는 소중한 책이 될 것이다. 책을 통해 맺어진 사람들의 짠한 우정이 담긴 이야기. 건지섬 사람들과 편지로 맺어진 우정에 끌려 혈혈단신 건지섬으로 떠난 줄리엣의 용기에 박수를.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녀의 꾸밈없는 성격이 참 좋았다. 누구든지 이 책의 주인공 줄리엣에게 반할 것이다.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여우같은 여자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친근한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는 줄리엣. 아주 오랜만에 친구가 되고 싶은 주인공을 만났다. 결국 그녀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참 다행이다. 난 그둘이 진작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