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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9 브루클린 풍자극 * 폴 오스터

폴 오스터를 어렵게 생각하는 그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드디어 발견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그중에서도 누군가에게 권해줄 수 있는 나의 작가의 책을. 이것으로 이 책의 감상을 마칠까 한다.지만 오랜만에 쓰는 감상이니 만큼 살을 좀 붙이자면 <브루클린 풍자극>은 지금까지 읽어 본 오스터의 책 중에 가장 사랑스럽고 온기가 넘치는 포근한 책이다. 책의 표지를 보시라. 심리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노란색 표지다.

사실 책의 시작은 조금 절망적이다. 죽을 장소를 찾아 태어난 곳, 브루클린으로 돌아왔다는 전직 보험판매원 네이선의 이야기. 네이선은 얼마전까지 암을 앓았고 항암치료로 완치됐지만 와이프와는 이혼을 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과는 연락을 끊기 일보직전인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예순의 노인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희망적인 말도 있는데 네이선은 죽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왔다. 하지만 인생이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들의 놀이터가 아닌가. 이제 조금씩 그에게 '행복'이라는 놀라운 선물 보따리들이 하나둘 도착할 예정이다.

죽음을 찾아 브루클린으로 왔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네이선이 생각한 소일거리는 '어리석은 일'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 은퇴노인의 전형인 네이선에게는 모자람 없는 돈이 있지만 하루하루는 무척 단조롭고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를 가장 괴롭힌 건 '외로움'이었다. 처음 그의 행복의 시작은 외조카인 톰을 고서점에서 우연히 만나고부터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톰은 문학도를 꿈꾸던 건실한 청년에서 뚱뚱보 실직자로 변해있었다. 아. 절망스런 인생의 쓴 맛을 또한번 맛본 네이선. 하지만 외로웠기에, 너무너무 외로웠기에 톰과 자주자주 (거의 매일) 만나서 그동안에 톰에게 일어났던 드라마같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물론 이 일들은 고스란히 네이선의 이야기 공책에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톰을 통해 그가 일하는 고서점 사장인 해리 브라이트먼의 또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네이선은 자신에게 일어난 절망적인 현실은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점점 새롭게 알게 된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 관여하게 된다. 먼 발치에서 한 여인을 보며 쿵쾅쿵쾅 뛰는 가슴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조카를 위해 그의 마음 속의 여신을 현실 속의 이웃으로 만들어 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분명히 불행했던 노인은 조금씩,조금씩 주변사람들의 마음 속에 행복을 불어 넣는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의 불행은 참을 수 있어도 마음이 쓰이는 주변인들의 불행과 절망만은 두눈 뜨고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네이선의 자애롭고 따스했던 본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세상은 가끔 공평함을 보여줄 때가 있다. 타인에게 마음을 쓰던, 그리고 그의 남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다른 이를 위해 보냈던 네이선에게도 행복이 찾아든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사랑하는 이에게 받았기에 짜릿했고 무엇보다 값졌던 화해와 용서였다. 그가 얻은 행복이 값지고 빛났던 건 사실 그 행복은 네이선 스스로가 만들어 낸 그가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나 스스로를 멍청한 녀석이라고 한탄할 때가 있는데 그건 정말 스스로가 멍청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질릴 정도로 인생에 대해 투정을 하고 있을 때, 문득 현실을 직시할 때가 있다. 그건 나는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무언가 바뀌기만을 간절히 바라기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다. 어리석다. 스스로는 손 놓고 그저 멍만 때리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인생이 그대로냐고 감히 하늘을 보고 삿대질을 하려 했다니. (ㅋㅋ) 20대의 초반을 조금 우울하게 보내면서, 그리고 그런 날들을 회상하면서 나는 실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스로의 행복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만들어갔던 네이선의 이야기를 읽으며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아직 행복이라는 실체를 보지도 못했으면서 너무 쉽게 행복과 불행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행복이라는 녀석은 어떤 모습일까. 더이상 두 손 놓고 '왜 그대로지'라고 오지 않을 기적은 바라지 않으련다.

1년에 한번 쯤 이기적인 나도 다른 이들의 행복을 맘껏 빌어주는 그날이 다가온다. 그날에는 그냥 아무 이유없이 째려봤던 커플들의 농밀한 애정행각도 자애롭게 미소지으며 넘길 수 있다. 왜? 그날은 '크리스마스'니까. 한가을에 크리스마스 타령을 하는 것은 테마가 '사랑'인 이 책을 읽으며 영화내내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생각났고 그 영화를 생각하니 크리스마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커플들의 공습이 있을 거라는 솔로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내로 나가 사람들을 구경한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흘러 나오는 귀에 익숙한 캐롤과 분주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분위기를 내려는 시내의 그 풍경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마 그런 날에는 모두가 마음 속에 사랑과 행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도 좀 착해지는 것 같아서 커플들에 치일 것을 각오하고 시내로 나간다. 단지 그 따스해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화려한 조명,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 '미소'를 보기 위해서. All you need is love and All I need is you(사실은 money ㅎㅎ).^^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