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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3 새는 * 박현욱

Media Review

사정이 있어서 책모임 예정일에 참석하지 못할 뻔 했었다. 얼마 전부터는 못 간다는 생각에 이번달의 선정작가인 박현욱의 책은 전혀 읽어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내용 하나 때문에 <아내가 결혼했다>를 아주아주 재미없고 이해 못할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나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없으면 아주 심심해 죽을라 하는 (쿨럭 -ㅅ-;;) 책모임 언니들이 나를 배려해 내가 시간이 나는 날로 모임날을 바꿔주셨다. 덕분에 다시 박현욱 작가의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평범한 고1 남학생이 첫눈에 반한 첫사랑 여고생에 대한 열망으로 드라마틱한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뻔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는 책이지만 이 책은 그런 진부한 내용과는 다르게 담백한 느낌을 준다. 나는 그 세대 (80년대 중후반의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꼭 시대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야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니니까.

첫사랑, 통기타, 음악제, 문예부, 신문배달, 가난, 학창시절과 왠지 잘 어울리는 소재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미지근하지만 한번 재미붙이면 무섭게 빠져드는 숨은 열정과 집념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묘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만만하게 봤다가 다시보게 되는. '은호'가 이뤄낸 모든 성과들은 퀸카 첫사랑을 위한 찔러보기였지만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였기에 그 순수함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그 때였기에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학창시절에 피단 진 사랑의 열병, 가까이 있었지만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뒤늦은 사랑의 깨달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두께의 이야기지만 그 여운이 참 오래간다. 

오래전 장승수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었는데 소제목중에 "날자! 한번만 더"라는 글귀가 있었다. 오랫동안 시선이 가는 문구였는데. 날아야지. 비상해야지. 새는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아야 아름답지.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는 볼품없고 불안하기만 하지만 마침내 품을 떠나 창공으로 비상하는 시원한 날개짓은 보는 사람에게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소년의 비상을 맛볼 수 있는 청춘소설은 담백하다.

특정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니만큼 나도 "나의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a 나의 세대는 그 위의위의 세대만큼 드라마틱한 격동의 학창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의 세대가 바라보는 눈일지도. 우리 세대 자체는 잔잔했을지 몰라도 나라 안팎으로는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다. 물론 나의 세대는 그 드라마틱한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지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는 불운을 겪었지만. 

80년대에는 겔러그가 있었다면 90년대는 "스트리트파이터"와 "슈퍼마리오"와 "따조"가 있었다. 우리는 12간지를 공교육으로 배우지 않고 TV만화 "꾸러기 수비대"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로 배웠다. 따조를 모으기 위해 오리온 까까를 미친듯이 먹어댔으며 초코파이에 들어있는 왕따조를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을 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나의 세대는 초등학교로 졸업한 1세대가 됐다. 고1때는 "이해찬 2세대"로 불리며 학력수준이 윗세대보다 떨어진다는 비운의 평가를 받았고 우열반이라고 해서 영어수학은 우반과 열반을 나눠서 수업을 받았으며 L장관님 덕분에 대놓고 야자는 안 했지만 특기적성이라고 해서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전교생이 학교에 남아 특기인지 잘 모르겠는 영어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물론 내가 선택한 특별 과목은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였지만 실제로 교실에 들어온 건 충청도 출신의 영어담당 선생님이었다. 우리의 2년 선배들은 물수능을 치뤄야 했고 사상 유례없는 수능만점자가 속출했다. 해마다 수능 만점자는 좋은아침이라는 프로에 나와서 정은아씨 앞에서 공부비결을 쏟아냈는데 그 해는 예외였던 걸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을 때 나는 그 감격스러운 모습을 1학년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지켜봤다. 특기적성 시간에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담임한테 걸린 후 몇몇친구들과 함께 교무실에 잡혀 있었다. 벌 받으면서 보는 티비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감동스러웠다. 2학년 때 9.11이 일어났으며 이번에도 생중계 화면을 책상 앞에 앉아 수업도중 생중계로 봤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잊지 못하는 2002년 월드컵 또한 책상 앞에 앉아 야자 중간에 시청해야 했다. 고3이었던 아주 중요한 시절, 예년 같았으면 16강도 못 갔던 우리나라가 그해만 유독 기적을 보여줘서 오래오래 (한달 내내) 온국민을 들떠 있게 했다. 하필 고3이었을 때 유독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서 우리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지. 언젠가 우리 세대를 이야기 해주는 동년배 작가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세대는 요즘의 윗세대들에게 정치나 경제 시사에는 무관심한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적인 세대로 보이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아련한 향수가 있음을 담백한 글로 환기시킬 수 있는 같은 세대의 작가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