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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9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 모리미 토미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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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다보니 몇 년전에 꽤 재밌게 봤던 영화 <패밀리맨>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이 따수운 가족영화라고 기억하는 그 영화를 나는 선택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사업가 잭(니콜라스 케이지)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퇴근하는 길에 그의 운명을 바꿔놓을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우연히 들른 식료품점에서 벌어진 강도사건, 물론 잭은 위기를 모면하고 페라리를 타고 자신의 고급아파트로 돌아가 넓다란 침대에서 잠이 들지만 아침에 그는 전혀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뉴욕 교외의 어느 가정집 안방의 소박한 침대에서 눈을 뜬 그는 옆에서 잠든 여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는 자신과 십여년전에 헤어진 옛 여자친구다. 거기에다 더 기절할 일은 그들은 부부이며 자신에게는 딸과 아들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알고보니 그는 십여년전 자신의 성공인생의 계기가 됐던 영국행을 포기하고 여자친구와 결혼했다는 거다. 그가 하지 않았던 '선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감동적인 영화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이브에나 다시 보기로 하고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로 돌아오면, 이 책도 역시나 '선택'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이다. 날 때부터 이 모양 이꼴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나'의 파란만장한 대학생활 2년여간의 이야기가 4개의 챕터로 나눠 펼쳐진다. 비슷한 골격에 선택만 차이가 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건 결국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입생 때 그를 유혹했던 수많은 동아리들 중 하나를 선택했건 혹은 아무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건 그는 만날 사람들은 만나게 되고 겪어야만 했던 일은 겪는다는 결론이다. 앞서 얘기한 <패밀리맨>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패밀리맨은 하지 않았던 선택을 긍정하는 이야기인 반면에 이 이야기는 하지 않은 선택도 '별 수 없다.' 어차피 운명이다.라고 얘기하는 책이다.

이 책은 꽤 능청그러운 문체로 쓰여져 있다. 나의 취향에 대해 조금 밝히자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그런 글이다. 나는 이렇게 비뚤어지고 능청스러운 글이 좋다. 웃음이 이어지는 문장과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독특한 사고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만에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책을 읽었다.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겉모습에 비해 조금 심오했지만 오히려 아닌 척 능청스럽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도 충분히 매력있다.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선택'들이 있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결정했을 때 -내가 사는 동네는 뺑뺑이가 아니라 시험을 쳐야했다. 일명 (고입연합고사)- 그리고 평소보다 잘 나왔던 수능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고깝게 여기고 재수를 선택했을 때, 그리고 내가 인생의 멘토라고 여기는 사장님을 만난 계기가 됐던 일, 내가 기억하는 나의 선택들이다. 그 일들로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하지 않아도 될 방황과 아픔을 겪었고 편협하고 나밖에 몰랐던 철부지에서 조금 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그 경계도 모르겠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그 모든 것들이 예정된 운명을 위한 길이었다면 조금 힘빠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난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나의 선택은 내 주변을 변화시켰을 것이고 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아쉽고 헛된 얘기다. 과거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재주가 없는 한 이렇게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이건 인간의 운명이다. 이건 정해진 거니까. 아니 순리니까. 물론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크고 후회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아놨지만 이렇게 견뎌온 시간도 값지고 대단한 것이다. 얼마전에 든 생각인데 인생을 100살까지 산다고 봤을 때 (물론 가정!) 나는 지금 딱 1사분기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나이가 한국나이로 2*이니까. 친구녀석들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올 연말에 정산 한번 해야겠다고.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결과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기회가 되면 친구와 여행도 다녀올 생각이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바다 건너 저 멀리.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