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기 전혀 다른 스파이 이야기가 있다. 볼거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이념과 조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조한 스파이물. '건빵'같이 텁텁하고 한 방울의 달콤한 탄산수가 그리워지는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시기가 배경인 소설인데 사실 이것은 태생이 같은 초창기 007시리즈와 맥락이 비슷하다. 007에 비해서 다루고 있는 소재도 전혀 다르고 좀 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대결하지만.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배신과 포섭이 반복되고 위장으로 상대를 낚는다. 동서냉전시기 영국과 동독의 첩보대결을 그렸지만 이념적인 정치색은 옅은 편이다. 대신 여기에는 개인이 느낄 수 있는 복수심과 뒷배경이라 할 수 있는 상대 조직의 두뇌싸움이 펼쳐진다. 이긴 쪽은 사람과 정보를 얻는 대신 도덕성을 상실하고 진 쪽은 사람과 정보를 잃는 대신 희생자라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 소설도 스파이 이야기답게 전세계가 배경이다. 특히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볼거리는 없는 소설이니 이런 공간적인 배경이 전혀 매력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현대판 스파이물의 매력을 이 소설에서는 기대하지 마시길. 등장하는 배경들은 하나같이 뿌옇고 삭막하게 그려질 뿐이니까. 하지만 캐릭터가 느끼는 인간적인 갈등은 공감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서냉전시기 스파이로 살아간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조직에 대한 회의와 인간성의 상실, 안타까운 희생이 던져준 죄책감과 번민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간적인 한계를 체념하고 자신을 놓아버린 한 스파이의 최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어느 쪽의 이야기든 공정하게 담겨있다. 대신 거기에는 공정하지 못한 희생과 승자가 느끼는 희열에 공감할 수 없는 이념과 가치의 갈등만이 존재한다. 그들이 내거는 대의와 승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인간성의 부재와 도덕성의 상실이 가져다 주는 결말의 맛은 그래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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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군 2007.12.12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냉혹하다고 해야되나 아님 허무하다고 해야하나 그렇죠.
이 작가는 최근에 Constant gardener라는 소설을 쓰게되죠.
비슷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영화 원작을 이분이 쓰셨군요.
영화는 못 봤지만... 스파이 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적지 않은 나이에 왕성하게 활동중이라니 존경스러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