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존 파울즈는 찰스라는 인물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추구하는 인생은 안정적으로 묻어가는 삶이 아니었을지. 그에 반해 사라는 조금 다릅니다. 그녀는 일단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였고요, 라임에서 오해를 받으며 살고 있죠. 사라라는 이름보다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고 불리는 여자죠. 찰스도 마찬가지고 책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도 그녀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찰스는 그녀와 얘기를 나누며 그녀를 오해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 짐작하지만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거예요. 풍요로운 빅토리아 시대에 물든거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안타까웠던 건 그런 찰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런대로 시대의 혜택을 받는 상류층 사람이니까요. 저는 오히려 자꾸 오해만 받는 사라가 눈에 밟히더라고요.
작가는 종종 분위기를 잡으며 엑스트라로도 출연해요. 중간중간 나와서 읽는 독자를 자꾸 부르죠, 이 소설이 메타픽션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는 이 소설이 일정한 흐름대로 흐르지는 않을 것임을 암시하죠. 이 소설은 그래서 결말이 다양해요. 제일 제 마음에 들었던 건 두 번째 결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부분이지요, 그 후에 강둑 난간에 서서 흐르는 강을 불길하게 바라보는 작가가 다시 등장해요. 마치 저승사자 같았어요. 그리고 슬픈 결말로 독자를 이끕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결말들이죠. 하지만 저는 둘이 이루어진 거에 한표 던질래요. 빅토리아 시대가 안고 있는 시대적인 허울허식과 마땅히 사라져야할 편견을 극복한 결말이요. 그게 그 둘에 제일 어울렸던 결말이라고 생각할랍니다. 그래도 제일 애틋했단 말입니다.
덧, 저는 눈썹 짙고 야성미 풍기고 갈색머리로 묘사되는 사라를 보며 브룩 쉴즈가 떠오르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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