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동적인 영화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이브에나 다시 보기로 하고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로 돌아오면, 이 책도 역시나 '선택'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이다. 날 때부터 이 모양 이꼴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나'의 파란만장한 대학생활 2년여간의 이야기가 4개의 챕터로 나눠 펼쳐진다. 비슷한 골격에 선택만 차이가 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건 결국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입생 때 그를 유혹했던 수많은 동아리들 중 하나를 선택했건 혹은 아무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건 그는 만날 사람들은 만나게 되고 겪어야만 했던 일은 겪는다는 결론이다. 앞서 얘기한 <패밀리맨>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패밀리맨은 하지 않았던 선택을 긍정하는 이야기인 반면에 이 이야기는 하지 않은 선택도 '별 수 없다.' 어차피 운명이다.라고 얘기하는 책이다.
이 책은 꽤 능청그러운 문체로 쓰여져 있다. 나의 취향에 대해 조금 밝히자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그런 글이다. 나는 이렇게 비뚤어지고 능청스러운 글이 좋다. 웃음이 이어지는 문장과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독특한 사고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만에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책을 읽었다.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겉모습에 비해 조금 심오했지만 오히려 아닌 척 능청스럽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도 충분히 매력있다.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선택'들이 있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결정했을 때 -내가 사는 동네는 뺑뺑이가 아니라 시험을 쳐야했다. 일명 (고입연합고사)- 그리고 평소보다 잘 나왔던 수능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고깝게 여기고 재수를 선택했을 때, 그리고 내가 인생의 멘토라고 여기는 사장님을 만난 계기가 됐던 일, 내가 기억하는 나의 선택들이다. 그 일들로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하지 않아도 될 방황과 아픔을 겪었고 편협하고 나밖에 몰랐던 철부지에서 조금 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그 경계도 모르겠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그 모든 것들이 예정된 운명을 위한 길이었다면 조금 힘빠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난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나의 선택은 내 주변을 변화시켰을 것이고 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아쉽고 헛된 얘기다. 과거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재주가 없는 한 이렇게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이건 인간의 운명이다. 이건 정해진 거니까. 아니 순리니까. 물론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크고 후회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아놨지만 이렇게 견뎌온 시간도 값지고 대단한 것이다. 얼마전에 든 생각인데 인생을 100살까지 산다고 봤을 때 (물론 가정!) 나는 지금 딱 1사분기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나이가 한국나이로 2*이니까. 친구녀석들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올 연말에 정산 한번 해야겠다고.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결과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기회가 되면 친구와 여행도 다녀올 생각이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바다 건너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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