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자키'라는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읽으면 잠시 잊고 있었던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가 오버랩 된다. 오마쥬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와자키는 필립 말로와 많은 점이 흡사하다. 비단 캐릭터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사와자키와 주변 인맥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말로가 LA의 경찰들과 평소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중요한 순간 공조의 앙상블을 이루는 것처럼 사와자키와 경찰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둘중 누가 더 좋으냐는 1차원적인 질문을 받는다면 나에게는 역시 우리 '필립'이다. 필립의 가오와 후까시가 나는 더 좋다. 사와자키는... 뭐랄까. 왠지 담배쩐내만 독하게 날 것 같은 후줄근한 이미지가 풍긴단말이지. 나는 좀더 세련되고 미남인 필립쪽이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탐정소설의 정형을 충실하게 따르는 소설이다. 혼자 일하는 자아가 강한 탐정에게 실종사건을 의뢰하는 의뢰인이 찾아온다. 하지만 의심많은 탐정은 왜 많고 많은 탐정들 중에 자신에게 의뢰를 하려는지부터 의심한다. 워낙에 사연 많은 탐정이라 의뢰가 들어오는 것부터가 의심스러운 일. 결국 이런저런 사연에 의해 사건을 맡게 된다. 사건을 해결할 때까지 달콤한 유혹과 아찔한 협박도 받지만 의리의 탐정은 절대로 의뢰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본인이 몸으로 때우는 한이 있더라도. 거의 막바지에 가서야 사건을 해결하며 썰을 풀어놓는다는 공식. 이 소설은 그런 공식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기본문제의 풀이에 충실한 기본유제라고 할 수 있겠다.
타인에게 무심하며 근거 없는 의심이 넘치는 각박한 세상에 무엇하나 매정하게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탐정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건이 해결된 뒤에는 모두가 즐거움과 안정을 찾은 가운데 혼자만 외로움을 곱씹는 사람들이고 외로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 홀로 남아 독한 알코올에 의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 하지만 그런 분위기 때문에라도 그들을 따르는 팬이 있고 그들의 활약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타인의 밝음을 위해 스스로는 어두운 밤을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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