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미술시간은 정말 지루한 노동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미술시간을 싫어했다. 그래도 챙겨간 물감과 스케치북으로 그림 비슷한 낙서를 끄적이기는 했었다. 나는 지금도 나의 유치원시절 첫날이 생각난다. 입학식이라는 걸 치르지 않고 중간에 들어간 나는 첫날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걸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맨날 흙만 주워먹는 야생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문화인이 되라하니.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림책에는 지워지지도 않을 두꺼운 크레파스로 알 수 없는 혼돈의 낙서를 하기 바빴던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 하니. 다섯살 꼬맹이는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 그린 그림은 옆에 남자아이가 그린 풍선을 따라 그리는 거였다. 내가 왜 이런 어린시절의 일을 기억하냐면, 어쩌면 내 평생 처음 느껴본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때문이었던 것 같다. 후회도 모르고 컴플렉스라는 것도 뭔지 모르던 백지같았던 어린 날에 나만 어찌할지 몰라 쩔쩔맸던 그 기억이 어른이 된 나에게는 부끄러움으로 기억되는가보다. 아무튼 이렇게 그림과는 인연이 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줄창 그리는 주제가 있었다. 바다와 하늘이다. 하얀 스케치북 가운데에 연필로 긴 선을 그린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이다. 가장 오른쪽 가운데에는 나중에 갈색으로 칠을 할 절벽을 매끄럽게 그린다. 나중에 물고기와 해 구름 해초를 그려넣는다. 순식간에 스케치가 끝이 난다. 맨날 그리는 게 이거였고 그래도, 내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게 이거니까. 나름 프로페셔널한 마음으로 임했다. (ㅋㅋ)


왜 이렇게 그림을 순식간에 끝을 냈냐면 내가 좋아하는 그 색으로 얼른 채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단으로 된 기본채색용 물감이 내가 갖고 있는 물감이었다. 색깔이 많으면 좋겠지만 다 쓰지도 않을 거 단순한 게 좋았다. 물감을 섞어서 만드는 혼합색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나는 기본색깔로 색을 칠했다. 하지만 어느날, 나는 아주 신기한 색깔을 알게 됐다. 밥아저씨가 물감을 실감나게 섞어대는 모습을 보고 물감을 섞을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과 흰색을 섞어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때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색깔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늘색 비슷한 것이지만 난 그 색을 하늘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색과는 색깔이 조금 다른 거 같은데. 하늘색보다는 좀더 진한 색깔이었다. 흰색을 적당히 섞어 눈에 익은 그 색깔이 나올 때까지 섞어야한다. 순전히 나의 손맛으로 만들어지는 색 (ㅋㅋ)


어쨌든 그 색은 내가 가장 완소하는 색깔이 됐고 그 이후로 나는 줄창 특별히 그릴 게 없으면 바다와 하늘을 그려 내가 좋아하는 그 색으로 배경을 칠했다. 이 색을 칠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내가 지금 조금 헷갈리는 건 내가 좋아했던 건 색깔 그 자체였을까, 아니면 파란색에 흰색을 섞는 바로 그 순간 느꼈던 어떤 변화의 시작이 재밌어서였을까 헷갈린다. 빨간색에 흰색을 섞어 분홍색을 만들어도 봤고 검은색에 흰색을 섞어 회색을 만들어도 봤지만 파란색에 흰색을 섞어 그 색을 만들었을 때 만큼의 희열과 기쁨은 느껴보지 못했다. 전혀 다른 것들이 서로 섞여 내가 좋아하는 그 색을 만들어낸다. 내가 절대 하늘색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색,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늘색이라고 부르는 그색, 분명히 내가 섞은 건 하늘색보다는 진했는데. (이런 쇠고집!ㅋㅋ) 실제 하늘을 올려다봐도 그 색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남들에게는 하늘색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늘색이라고 인정하는 않는 색, 나는 그 색이 정말 좋다. 바다색깔로 칠해도 어울리고 하늘에도 어울렸던 그 색, 그래서 매번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는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져버리지만.. 좋아하는 색깔이 있으신가요? 네 그럼요, 파란색과 흰색을 섞으면 나오지만 하늘색은 아닌 어떤 색이요. 저는 그 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Posted by 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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