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읽어 본 책을 일 년이 지난 뒤 다시 읽어 본 것 뿐인데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음 읽었을 때 기억에 남은 게 하나도 없었나 보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처음에도 그랬지만 두 번째 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짜증과 낭패감을 안겨주는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소득이 있었다면 이제 이 책에 담긴 줄거리는 절대 잊지 못할 거라는 것과 아주 조금 퍼즐이 맞춰졌다는 거다. 내가 이해하고자 한 건 책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아주 소박한 목표였다. 줄거리라도 이해하자. 그 목표는 어느정도 달성한 듯 싶다. 하지만 ‘뉴욕 3부작’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정말 모르겠다.
‘뉴욕 3부작’은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처음 두 개의 이야기는 읽으면 줄거리 자체는 이해 되겠지만 연관성은 찾기가 어렵다. 마지막 이야기인 <잠겨 있는 방>을 읽어야 비로소 이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어떤 사연이 담긴 얘기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세 이야기는 전개방식이 비슷했다. 쫓는 자, 쫓기는 자, 하지만 쫓는 자의 시각에 이야기는 맞춰졌고 각 단편에서 탐정의 역할을 했던 주인공들 세 명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뿌리는 마지막 이야기인 <잠겨 있는 방>이었다.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었고 앞선 두 이야기는 <잠겨 있는 방>을 모티브로 쓰여진 잠겨 있는 방의 ‘나’가 쓴 소설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혹시라도 읽으실 분들을 위해 가려둔다. 밑에 이어진 내용정리는, 읽는데 고생한 나를 위한 내용정리가 되겠다. 혹,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가능성이 많다.^^;;
결국 앞선 두 이야기 <유리의 도시>와 <유령들>은 <잠겨 있는 방>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쫓는 자: 나 쫓기는 자: 팬쇼
<잠겨 있는 방>에서 ‘나’는 <유리의 도시>에서 우연히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피터 스틸먼을 쫓는 ‘퀸’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퀸의 이름이 퀸인 것은 <잠겨 있는 방>에서 처음 팬쇼를 쫓았던 사설탐정인 ‘퀸’에서 따온 이름이다. <유리의 도시>에서 피터 스틸먼의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퀸이 기차역에서 피터 스틸먼을 기다리는 동안 두 명의 똑같이 생긴 피터 스틸먼이 등장한 것은 <잠겨 있는 방>에서 ‘나’와 어린시절을 함께 했고 그가 닮고자 했던 소꿉친구인'팬쇼'와, 임신한 아내를 버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세상과의 단절과 고립을 선택한, 성년에는 '나'와 연락이 끊겨 알지 못했던 ‘팬쇼’를 의미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차역에서 본 두 명의 피터 스틸먼 중 누구를 쫓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말쑥하고 단정한 피터 스틸먼이 아닌 추레한 노인인 피터 스틸먼을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그가 쫓기로 작정한 피터 스틸먼이 일정한 글자를 만들며 뉴욕의 리버사이드 공원 일대를 배회하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만의 규칙과 틀에 얽매임을 보이는 인물인 것은 현실을 거부하고 고립을 택한 <잠겨 있는 방>에서의 ‘팬쇼’를 빗댄 것 같다. 결국 그런 피터 스밀먼을 쫓다가 자신의 삶을 잃게 되는 탐정 퀸은 <잠겨 있는 방>에서 ‘팬쇼’를 쫓다가 파리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뉴욕에 있는 가족과 자신의 삶을 잠시 잊은 ‘나’의 초상이 아니었을지.
그리고 두 번째 이어지는 <유령들>에서도 내용은 다르지만 브라운은 <잠겨 있는 방>에서 처음 팬쇼의 행방을 쫓던 사설 탐정 ‘퀸’을 의미하고 블루는 ‘나’ 그리고 블루가 행동을 감시한 블랙은 ‘팬쇼’가 아니었을까. 블루에게 블랙을 감시해달라고 의뢰를 부탁한 익명의 의뢰인인 화이트는 <잠겨 있는 방>에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실종된 날로 부터 7년째 되는 날이 자신이 죽는 날이 될 것임을 알려와 '나'가 팬쇼를 쫓게끔 유도한 실종된 '팬쇼'였던 것 같다. <유령들>에서의 결말에서 쫓긴 자는 블랙이 아니라 블루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탐정 '블루'는 <잠겨 있는 방>에서 마지막으로 팬쇼를 만나 팬쇼가 '나'와 '나'의 아내인 소피의 주변을 맴돌았음을 알게 되고 '나'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팬쇼가 실제로는 '나'를 감시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나'가 아니었을까.
에휴. 이제 다시는 읽지 않을 거야. 나를 너무 고생하게 한 책이다.
뉴욕 3부작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울하고 고독한 책이다. 폴 오스터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책을 읽은 건 조금 후회되는 일이다.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을, 섣부르게 읽었다가는 낭패보기 쉬운 책을 너무 쉽게 집어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폴 오스터의 작품은 매력이 있다. 그의 작품을 이제 두 권째 읽은 거지만 어쩐히 그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너무 안락해 보이고 편해보이기 까지 하다. 처음엔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주인공들이 우연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에 의해 점점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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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군 2006.06.21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거 읽다가 포기한 --;
광군님-0- 저도 처음엔 피봤스요~
두번째 읽는 건데도 읽는데 2주 걸렸다죠?
주니어 2006.06.26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흠. 이 책들을 생일선물로 받은지 4년은 된듯한데...
아직 안읽고 어딘가에 묵혀두고 있다는...;;
시간 좀 내봐야겠으요.
사실 책 겉표지가 예뻤어요. 디자인에 혹해서 샀던 것 같기도 하고^^a 그렇지만 속에 내용은 정말 어우~ 어지럽습니다.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저한테는 정말 힘든 책이었습니다. 폴 오스터, 만만히 보면 안되겠어요..
els 2008.06.27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이해안됬었는데 정말 ㄳ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