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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9 Holes * Louis Sachar (6)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도통 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게다가 영어에 있어서는 공포증에 가까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내가 드디어 영어원서를 완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영광을 딴 짓 안 하고 만리장성을 쌓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거 하나  못 해서야 어따 쓰겠느냐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응원한 나 자신에게 돌리고 싶다.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원서이긴 하지만 그 바닥에서 말하는 난이도는 조금 쉬운 편에 속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모르는 단어들이 무지 많이 나왔다는 사실.

문명의 이기를 한껏 이용하며 나는 비교적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간결한 문장 (아는 사람이 본다면 독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전개 덕분에 처음했던 걱정보다는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 너무 재밌었다.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블랙유머라고 해야할지 시니컬한 이야기라고 해야할지 국적을 초월해서 나하고 웃음코드가 좀 맞는 책이었다.

죄를 지은 청소년 아이들에게 너 캠프 갈래 감옥 갈래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캠프에 갈 것이라고 하지 않을까. 천성이 착하고 고운 스탠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캠프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즐거운 캠프가 아니어서 문제지. 캠프에 간 스탠리가 할 일은 무지 간단하면서 골 때리는 일이다. "삽질" 하루종일 구덩이 하나를 파는 것이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같은. 사람들은 삽질을 쉽게 운운하지만 삽질 만큼 지겹고 짜증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살면서 진짜 제대로 된 삽질을 할 기회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삽질 운운할 자격이 없을지도.) 그걸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유도 없이 한다고 생각해보라. 도 닦는 심정이 아니라면 즐거이 받아들일 일은 아니지. 하지만 스탠리의 그 삽질은 후에 훈훈한 미담으로 남을 아름다운 몸짓이었다. 그의 삽질 덕분에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도 풀리고 스탠리의 선조의 숙원도 덩달아 이루고. 이런 뻔한 결말을 예상하기도 했지만 역시 그런 결말이어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지.

청소년소설이지만 이 안에는 정말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뿌리 깊은 흑백 갈등, 서부시대의 갱들, 집시여인, 저주, 왕따. 하지만 진부하지 않게 담백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특히 샘과 캐서린 선생님의 그 애틋한 러브스토리. 무척 고운 이야기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다면) 뻔하지만 애써 그 뻔함을 비트는 재주를 가진 이야기꾼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서 하나를 완독했다는 이 뿌듯함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기쁘다. 다음에는 뭘 읽어볼까나.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