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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6 11분 * 파울로 코엘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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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는 마치 한편의 우화집 같았다. 주인공 산티아고(이름 마저도 수행자스러운)가 신비의 연금술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동안 그가 겪었던 일들과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통속적인 교훈까지. 파울로 코엘료에 갖었던 기대감은 처음에는 상승점이었다가 <악마와 미스프랭>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어오며 점점 하강점을 찍게 된다. 그래프로 그리면 콧물이 흐르는 모양의 그래프가 될런지도. <11분>을 최근에 읽었다. 브라질의 순진했던 소녀 마리아가 스위스로 취업이민을 떠나 이런저런 사연에 의해 창녀가 되고 1년만 창녀 생활을 하다가 돈을 모아 브라질로 다시 돌아간다는 줄거리. 책의 제목 11분은 실제 섹스가 이뤄지는 평균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물론 창녀인 마리아에게 11분은 너무너무 하기 싫은 그녀의 노동의 시간 중 그녀가 실제로 진짜 견뎌야만 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마리아에게는 고통의 시간 11분. 11분이 지나면 마리아는 자유로울 수 있다.

마리아를 통해 섹스의 성스러움을 말하고자 하는 코엘료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섹스는 몸의 접촉만이 아닌 영혼과 영혼의 진실한 합일이어야 한다는 그의 얘기. 섹스를 직업으로 하고 사랑이 아닌 몸만을 허락하는 그녀의 직업적인 특성덕에 정말 건강한 성생활은 그런 것이 아님을. 몸의 대화가 아닌 마음의 대화여야 한다는... 그러니까 나한테는 조금 어려운 얘기. 하지만 나중을 위해 그의 교훈적인 의도는 충분히 새겨 들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이 책에서 주인공 마리아를 코엘료가 정말 애정을 갖고 그렸는지는 의문이다. 모든 상황을 수긍하며 분노하지 않는 마리아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창녀가 아닐까 싶었다. 여자로서 창녀는 정말 자존심을 팔아야만 하는 일이다. 여성으로서는 존중받을 수 없는 최후의 길이다. 그런 길을 제발로 너무 쉽게 찾아가는 건 아니었는지. 오히려 굴곡이 좀더 지고 갈등도 좀더 심화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그녀가 창녀의 길로 들어서는 부분이어야 하는데 어쩐지 이 책에서 그 부분은 평탄하고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리고 또 하나. 남성들의 이기적인 성적판타지의 도구역할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새로운 (내가 보기에는 잔인하고 끔찍한) 성행위에 만족까지 느끼는 그녀를 보며 이 여자에게는 모든 성적인 방식이 다 통하는갑다 여겨졌다. 그만큼 주인공 마리아를 코엘료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그려놨다.

오히려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성녀처럼 여기는 마리아는 또 뭔지. 창녀를 찾는 남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이유를 부여해주며 또 그것을 이해해주는 그녀를 보며 이 여자는 정말 속여먹기 쉬운 여자같았다. 나는 이 세상에는 알아야 할 필요는 있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는 일들이 몇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창녀를 찾아가는 이유와 가족에게 손찌검을 하는 이유다. 특히 차마 자기 아내에게는 못 할일을 같은 여자인 창녀에게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이기적인 생각이 싫다. 원조교제를 하는 아저씨들이 자기 딸은 안돼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런 마리아가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의 심정을 굳이 이해해 줄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마리아의 심정을 이해해주어야지. 물론 그럴 거면 창녀를 찾아갈 이유가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해피엔딩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내 보기엔 마리아가 아니라 랄프다. 마리아는 좀처럼 선택을 하지 않고 상황에 모든 일을 맡기는 타입의 인물인지라 책의 결말이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람은 많은데 결국 어떻게 되든 신의 뜻, 혹은 운명일거라는 체념이 먼저인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꿈꾸는 백마 탄 왕자가 랄프였다. 그는 부와 명예. 재능에 얼굴까지 온동네 소문난 미남되시겠다. 한가지 그에게 부족한 건 섹스! 단순한 섹스가 아닌 그와 영혼이 통하는 심도깊은 섹스! 그리고 마리아와 몇번 밤을 보내며 마리아와 속궁합이 기막히게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책에서는 몽환적인 분위기다. 이렇게 막 그려지지는 않는다.) 결국 그는 마리아와 사랑에 골인하며 그에게 필요한 모든 걸 얻었다. 결론! 난 이 책의 주인공이 마리아가 아니라 실은 랄프였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