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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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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늦게도 봤다. 진작부터 궁금했던 영화였는데 이걸 왜 이제서야 봤을까. 조금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남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졸업하고 농익은 감정이 영글어 있을 텐데 나 혼자만 뒷북치게 생겼다. 웃긴 장면 하나없는데 자꾸 웃음이 나온다. 아. 너무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참 오랜만에 만났다.

나는 이렇게 힘을 뺀 영화가 좋다. 담담하면서도 은유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영화가 끌리는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랬다. 만남과 헤어짐도 있고 연인들의 갈등도 있는 그런 사랑영화다. 눈물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방해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은은할 수가. 두 연인의 사랑에 걸림돌이 될만한 이런 장애들에 이렇게 힘을 빼다니. 와! 특이하다. 인물들의 경계도 흐릿하고 관계도 부드럽게 걸쳐져 있다. 참 부드러운 영화다.  

초반에 나오는 스틸컷같은 장면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츠네오의 손에 이끌려 이런저런 세상 산책을 하며 그녀의 기억 속에 새긴 순간의 시선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파란하늘의 뭉게구름도 보지 못하는 조제다. 조제의 바람대로 저 구름을 집에 가져갔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더 애틋하고 소중했을 그런 세상을 향한 조제의 눈길이었다. 사람은 위를 바라볼 때보다 아래를 바라볼 때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했던가. 츠네오에게는 조제가 아래를 내려다 봐야만 보이는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의 결말이 어찌되었건 사랑하는 동안에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참 담백하게도 끝이 난다. 츠네오의 고백처럼 츠네오가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츠네오를 탓하지 못할 것이다. 조제와 함께 하는 동안 조제의 다리가 되어주고 그녀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것을 보게 해준 고마운 친구가 아닌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애인을 상상하고 그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왜 이렇게 당연한 얘기를 장애소녀의 입을 통해 들을 때면 어색해하는 걸까. 아마 내 안에 편견과 고정관념이 뿌리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해 말하려 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힘을 빼고 조제와 츠네오를 캐릭터 자체로 그렸나 보다. 이 둘의 사랑도 극적일 필요 없고 자극적인 신파조 눈물도 필요없는 평범하게 봐줄 수 있는 사랑이다. 특별하게 볼 필요없다.

나른한 말투에 화도 참 앙증맞게 내는 조제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유모차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즐기던 바로 그 순간에 아찔한 위험을 넘긴 조제가 나를 죽일셈이냐라고 츠네오를 원망하는 표정조차도 너무 귀여웠다. 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세상을 향한 벽을 너무 높게 쌓아버린 조제는 츠네오를 만남으로써 그 벽의 높이도 조금씩 낮아지고 양파껍질같은 그녀의 매력을 조금씩 드러낸다. 물론 츠네오의 처음의 사랑은 조제가 해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이었지만. (ㅎㅎ) 조제의 방에는 에펠탑이 있다. 하나는 조제의 머리맡에 흰색의 모형으로 있고 또 하나는 조제의 은신처인 옷장 문에 큼지막한 사진으로 붙어있다. 그 사진 밑에는 그룹 ABBA의 사진도 붙어 있다. 아마 조제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꼭 한번 파리의 에펠탑을 실제로 보고 싶어 하고 아바(ABBA)의 음악을 마음껏 듣고 싶어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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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장면을 참 담담하게 그렸는데 츠네오의 어깨에 매달려 휠체어는 필요없다했던 조제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볼 일을 본다. 그녀의 평범한 일상의 연속을 보여주며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조제를 말한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다. 생각보다 씩씩하고 강한 여인이었다. 조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연출이 정말 세련되고 섬세하다. 외로움을 책에 파묻고 그 안에서 세상을 만나고 호랑이와 물고기를 상상했던 조제역의 이케와키 치즈루도 귀여운 얼굴의 순수해 보이는 듯한 인상의 배우였다. 프랑수아즈 사강이었던가? 조제가 자신의 이름을 따온 소설을 쓴 작가가? 다른 건 몰라도 조제가 읽었던 사강의 소설 두 권은 꼭 만나보고 싶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