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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24 폐허의 도시 * 폴 오스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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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폴 오스터의 작품은 <폐허의 도시>를 포함해서 세 편의 책을 접했다. <달의 궁전>은 몽환적인 분위기와 스스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들을 인상적으로 보았고 <뉴욕 3부작>은 쉽게 이해가 안 됐던 인물들의 숨박꼭질 인생사를 만나보았다. <뉴욕 3부작>을 소개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탐정소설 형식의 추리 어쩌구 저쩌구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장치였기에 그 얘기는 빼놓겠다. <폐허의 도시>도 앞의 <뉴욕 3부작>처럼 정말 정이 안 가고 웬만해서는 다음 장을 넘기기가 싫은 소설이었다. 어쩌면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이 안 들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폴 오스터 소설은 거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자꾸 생긴단 말이지. 읽고 싶지는 않은데 또 한번 읽고 싶은 마력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궁시렁궁시렁 책을 읽으면서도 결국에는 끝까지 읽게 된다. 이해를 못  했으면 오기 때문이라도 다시 손에 잡게 된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아리송한 매력. 내가 느끼는 폴 오스터 작품들에 대한 간략적인 소견이다.

<폐허의 도시>의 배경은 그동안 폴 오스터의 작품에서 자주 보았던 배경인 뉴욕이 아닌 그냥 어떤 도시다. 주인공 안나는 그 도시를 취재하러 간 오빠를 찾으러 그 도시로 들어온다. 이름도 없고 어디 붙어있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 도시. 하지만 그 도시는 일단 문명사회라기보다는 이미 망해버린 지옥같은 곳이다. 사람들은 목적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산다. 그러다가 죽고, 새 생명은 태어나지도 않는 종말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는 도시. 그 곳에서 안나는 '당신'에게 보내는 글을 남긴다. 쉽게 말해서 안나의 '폐허의 도시 체험기'라고 하면 될 듯하다.

그렇지만 절대로 인물들의 입에서 이 도시를 비난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은 그냥 살고 있을 뿐이고 상황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들 방식으로 맞춰 산다. 도시의 책임자들을 원망한다던지 다른 도시로의 탈출을 간절하게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살고 본다.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오직 쓰기만 하는 소모적인 도시. 그래서 이곳은 희망이 없다. 책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책이 끝난다. 마치 지금 어딘가에서도 누군가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듯, 그 도시의 삶의 한 단면이 잠깐 일반인에게 공개된 듯한 느낌이다.

또 하나 느꼈던 특징은 물론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이 소설에서도 나오는데 그들의 야비함 정도가 모든 게 갖추어져 있는 이 현실 속에서의 사람들의 야비함 정도와 비슷하다는 거다. 물론 정도가 엽기에 가까운 인물들도 몇명 나오지만 그런 사람들이 어디 여기라고 없겠냐고. 삶의 열악함이 여기보다 더한 곳일텐데도 특별히 추악한 인간들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냥 그 깊이가 비슷했다. 다만 특징이 있다면 모든 게 결국은 끝이 난다는 것. 학문의 연구도 결국 종말을 맞고 이 도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사회봉사도 결국에는 어떤 희망도 없이 끝나버린다.

여러 가정을 통해서 인간의 삶이 어떨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소설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글을 통해서 인간에게 어떠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소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도 있다. 어떤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게 되는지 가정해 보는 소설들, <폐허의 도시>는 그런 환경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사기와 기만, 무능함과 게으름으로 가득 찬 이런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그런 일들에 복수한다 거나 지금보다 더 큰 노력과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그냥 되는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동안 폴 오스터의 작품을 통해 만나봤던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이번에는 인물이 아닌 도시를 통해 보여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폴 아저씨 참 시니컬 하다.

덧, 내용 중에 페르디난드라는 작자가 잡은 X를 산 채로 불에 구워서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꿈에 나왔었다. 자다가 중간에 놀래서 깼다. 읽을 때 좀 으윽~(ㅡㅡ;)했던 장면인데 그게 꿈에 나올줄이야-0-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