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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5 망량의 상자 * 쿄고쿠 나츠히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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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우부메의 여름'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 때문에 교고쿠 나즈히코의 작품은 이젠 대놓고 호감이 생긴다. 재밌을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긴다고 해야할까? 상하권 합쳐서 1000페이지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분량 때문에 선뜻 손 내밀지 못하다가 이번에 작정하고 읽었다. 매일매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만 읽다보니 꼬박 한달이 걸린 것 같다.

고서점을 운영하고 음양사이기도 한 교고쿠도는 온갖 지식에 무불통달한 궤변가이다. 이 사람 얘기는 지루할 때도 있고 흥미있을 때도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얘기할 때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으며 빨리 결론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난 친구들을 살짝 째려보며 설레발을 치는 친구를 짜게 식어가게 만든다. 그의 친구들은 어찌어찌하다가 엄청난 사건에 가담하고 실마리가 보이지 않거나 단서들을 찾아냈을 때 교고쿠도에게 안고 가 풀어 놓는다. 그럼 교고쿠도는 사람들이 모아놓은 정보를 토대로 퍼즐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사건이 한창 일어날 때는 크게 기여하지 않다가 그만의 방식으로 마무리를 해주는 역할이다.

'망량의 상자'는 연쇄토막살인사건과 자살미수사건, 유괴사건까지 맞물려 줄거리를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상관없어 보이던 사건들이 사소한 단서들로 모두 연결되어 있었고 교고쿠도와 그의 지인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조한다.

교고쿠도 시리즈가 재미를 주는 요소들은 일단 요괴가 소재라는 점이다. 이야기, 특히 옛날 이야기, 그중에서도 신기한 요괴 이야기는 구미가 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한때 애니메이션 '이누야샤'를 즐겨 본 이유와 비슷하겠지. 신화나 민담,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울려 있다. 거기에 친절한 교고쿠도의 불친절한 설명까지 더해지면 얘기가 참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소재가 주는 기묘함과는 거리가 멀게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결국 신기하고 불분명한 건 없으며 아무리 기이해 보여도 소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현재의 증명된 지식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일이었고 결국 그 말이 맞다. 처음에는 참 기묘하네라고 느껴졌던 이야기도 포장을 풀어보면 절대 신기한 게 아니었다는 말씀.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막을 내린다. 결국 모든 게 결말에 가서는 다 설명이 되니 한 번 책을 들으면 좀처럼 책을 내려놓기가 힘든 이유다.

상권 중간에 보면 교고쿠도가 영능력자와 점술사에 관해 세키구치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가 나와서 여기에 옮겨 적는다. 미래의 부정적인 일을 알려주는 점술사를 비판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이것은 대개 빗나가게 되어 있네. 앞일을 알 도리는 없거든. 하지만 만일 도리구치 군이 이미 완전히 나-점술사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경우에는 점괘가 빗나갔을 때도 점을 침으로써 위험을 알아차리고 경계하여 운명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테지. 따라서 살아남았을 때는 감사한 마음에 점술사를 찾아와, 점괘를 인생의 지침으로 삼게 되는 셈일세."

생각해 보니 미래의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대개의 점쟁이들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말해준다. 그리고는 부적을 준다던지 나름의 방책으로 그 일을 피하게 해준다는데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었는데 점을 본 사람들은 자기가 점을 봐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니 교고쿠도가 한 저 주장도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