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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0 밑줄 긋는 남자 * 카롤린 봉그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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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들르면 책보다는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는 게 더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사연 있는 책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보는 눈은 있는 기특한 사람들) 너무 기특해서 궁딩이라도 팡팡 때려주고 싶다+_+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참견을 하고 있는 중인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행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언급되면 내귀는 당나귀 임금님 귀보다 더 커진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계속 얘기해봐요.' 내 속 모르고 딴짓하는 일행의 친구.. '이봐요~ 당신 친구가 지금 중요한 얘기를 막 하려는 참인데 왜 얘기를 끊는 거예요? 急실망이야.-_-;' 어쩌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쓴소리가 들려오면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저 사람을 세뇌라도 시켜주고픈 충동을 느끼는 그런 날도 있다. 진짜 읽어본 게 맞냐고. 어디서 주워들은 거로 아는 체 하는 거 아니냐구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 걸 참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잠시라도 스칠 수 있는 곳, 나와 그들을 잠시 이어주는 만남의 장소, 난 그래서 '서점'이 좋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꽤 근사하다. 서로를 연결해주는 공통점이 있다는 건 생판 남이었던 타인과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해주는 힌트가 된다.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9800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는 체로 인터넷 안면을 튼다. 방가방가!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저도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요. 앞으로 자주자주 놀러올게요.라는 겉치레 약속이라도 나에게는 소중하다. 실제 생활에서 나는 책 얘기를 마음껏 떠들지 못한다.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 관심조차 없는 것들에 대한 얘기는 이기적인 나만의 얘기밖에 될 수 없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소통할 수 있는 입구를 발견한다는 건 무척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 내 얘기에 관심갖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는 아마 이 사이버세상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아직까지는 나에겐 얻은 게 무척 많은 곳이기 때문에.

『밑줄 긋는 남자』의 콩스탕스가 '밑줄 긋는 남자'에게 푹 빠졌던 이유는 그 또한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 '로맹 가리'를 좋아하고 그가 추천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노름꾼』이 꽤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사랑하는 작가를 그 또한 좋아한다는 건 뭔가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야기이고 어쩌면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내가 찾던 '그'가 아닐까하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콩스탕스를 스쳐간 남자들은 그녀에게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녀는 '밑줄 긋는 남자'만큼은 그들과 다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와의 로맨스를 상상하고 그와 함께 맞는 아침을 꿈꾼다. (아무도 모르게 잠시 미쳤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데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무슨 행동을 못하겠는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설레임 속에서 기쁨을 찾는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아니 그로인해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수많은 연예소설 속의 여주인공처럼 '나'또한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 왜 우리라고 안되겠는가. 콩스탕스는 이야기 밖에서 그저 감상하고 책을 덮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로맨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매력적인 모델이다. 게다가『밑줄 긋는 남자』는 웬만한 추리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 내기 위한 그녀의 귀여운 꼼수들. 아마 밑줄 긋는 남자는 콩스탕스를 알게 된다면 이 귀여운 아가씨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베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콩스탕스가 '밑줄 긋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이루어지지 않는 로망에 젖어보는 것도 가뭄에 단비같은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그녀도 우리처럼 현실에 지칠 때가 있을 것이고 사랑 때문에 하염없는 눈물로 괴로워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밑줄 긋는 남자'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미완에서 주는 그 설레이는 기다림 때문에 다시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번 행복감을 느꼈는데 콩스탕스가 좋아하는 작가 '로맹 가리'의 책중 한 권이 대기중이라는 것과 무엇보다 클로드가 추천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무려 두권이나 나에게 읽혀지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