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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2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존 르카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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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 '제임스 본드' 현재 할리우드에서 소비되는 인기 콘텐츠 캐릭터다. 스파이 시스템과 싸우는 전직 스파이와 스파이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현직 스파이. 둘 중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는 '본'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본'이라는 캐릭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 싸운다. 그가 내세우는 싸움의 당위성이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인데 시리즈의 첫 막을 연 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처럼 그의 진짜 정체를 그 스스로 밝혀야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이슨 본'의 이야기고 거기에 양념으로 조직의 부패와 배신이 껴있다. 하지만 007 시리즈는 본시리즈와는 궤도를 달리한다. 제임스 본드는 대의를 위해 싸운다. 그는 철저하게 시스템 안에서 싸우며 본드는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 낸 영웅이다. 악당이 나오고 그 '악당'들은 잘 갖춰진 시스템의 재물이 된다. 조직은 그렇게 본드에게 미션을 부여하고 대신 물질적 지원으로 그를 돕는다. 바로 여기에서 007시리즈 특유의 볼거리들이 나오는 것이고.

하지만 여기 전혀 다른 스파이 이야기가 있다. 볼거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이념과 조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조한 스파이물. '건빵'같이 텁텁하고 한 방울의 달콤한 탄산수가 그리워지는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시기가 배경인 소설인데 사실 이것은 태생이 같은 초창기 007시리즈와 맥락이 비슷하다. 007에 비해서 다루고 있는 소재도 전혀 다르고 좀 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대결하지만.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배신과 포섭이 반복되고 위장으로 상대를 낚는다. 동서냉전시기 영국과 동독의 첩보대결을 그렸지만 이념적인 정치색은 옅은 편이다. 대신 여기에는 개인이 느낄 수 있는 복수심과 뒷배경이라 할 수 있는 상대 조직의 두뇌싸움이 펼쳐진다. 이긴 쪽은 사람과 정보를 얻는 대신 도덕성을 상실하고 진 쪽은 사람과 정보를 잃는 대신 희생자라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 소설도 스파이 이야기답게 전세계가 배경이다. 특히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볼거리는 없는 소설이니 이런 공간적인 배경이 전혀 매력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현대판 스파이물의 매력을 이 소설에서는 기대하지 마시길. 등장하는 배경들은 하나같이 뿌옇고 삭막하게 그려질 뿐이니까. 하지만 캐릭터가 느끼는 인간적인 갈등은 공감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서냉전시기 스파이로 살아간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조직에 대한 회의와 인간성의 상실, 안타까운 희생이 던져준 죄책감과 번민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간적인 한계를 체념하고 자신을 놓아버린 한 스파이의 최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어느 쪽의 이야기든 공정하게 담겨있다. 대신 거기에는 공정하지 못한 희생과 승자가 느끼는 희열에 공감할 수 없는 이념과 가치의 갈등만이 존재한다. 그들이 내거는 대의와 승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인간성의 부재와 도덕성의 상실이 가져다 주는 결말의 맛은 그래서 쓰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