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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5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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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한국시간으로는 9월12일 수요일이었던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담당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서로 떠들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뒤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우리들에게 TV를 틀어보라고 하셨다. 원래 TV가 안 나오는데 그날은 공중파 채널이 모두 잡혔다. 수업 안 하고 TV를 본다는 생각에 마냥 좋아했지만 TV에서 보여지는 장면은 웃을 일이 아니었다.

CNN 생중계 화면을 받아 국내방송에서 뉴스속보를 방송하고 있었다.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에 타고 있었다.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건물이 무너졌다.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사람들의 다급한 비명소리, 믿을 수 없었다. 건물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렸고 비명을 질렀다. 우리들은 말이 없었다. 높은 건물이 무너지는 걸 본 건 오래 전 남산 앞 외인아파트가 폭파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고 두번째로 보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날 하루의 분위기는 너무 낯설었고 TV에서는 종일 속보가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9.11은 그런 거였다.

아마 9.11이 있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군가는 상실감과 그리움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9.11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들이 공개됐다. 사람들을 구한 젊은 소방관의 이야기를 통해 영웅이 등장했고 안타까운 사연들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했다. 그 사건으로 오사마 빈라덴, 알카에다는 무시무시한 악명을 얻게 됐고 전 세계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그들을 증오했다. 몇달 후 부시는 복수라는 명분 아래 알카에다가 은신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오스카 셸은 그날 아빠를 잃었다. 가족들은 이 아홉살짜리 아이에게 솔직할 수 없었지만 오스카는 알고 있었다. 알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른 척해야 했고 혼자만의 비밀은 계속 쌓여갔다. 아빠의 서재에서 발견한 열쇠는 아이가 아빠의 흔적을 찾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뉴욕에 있는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비밀리에 만나게 된다. 아이가 보여주는 명민함과 천진난만한 그리움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스카가 만나 본 블랙이라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별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 책 안에 속사포처럼 감싸져있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평생 안고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과 이제 막 그리움과 상실감을 알게 된 아이와의 만남은 그래서 진지했고 안타까웠다. 아이의 발칙한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마지막 부분과 그림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램이기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했던 오스카의 할머니, 9.11로 아빠를 잃은 오스카, 그리고 다시 돌아온 오스카의 할아버지. 세대를 뛰어넘는 상실감과 고통을 통해 한 세대의 아픔이 아물기도 전에 그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건 아니었을까. 9.11이 남긴 시대의 상흔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시대의 아픔은 개인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9.11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누군가는 건물들의 잔해가 치워지고 포크레인과 크레인이 왔다갔다하는 9.11의 현장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다시 세워지는 건물을 바라보며.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