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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2 하트모양상자 * 조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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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괴상한 물건을 수집하며 고스족 여성이 취향이라고 느끼는 왕년의 한 인기했던, 지금은 농장 딸린 넓은 대저택에서 나이차 많이 나는 고스족 여성과 동거중인 락스타 주드는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죽은 아버지의 양복을 판다는 것을 보고 그 물건을 구입한다. 본인이 그 물건을 구입했는지 조차 가물거릴 때쯤 그 양복은 하트 모양 상자에 담겨 배달되고 그 후로 저택에 죽은 노인이 잊을만하면 나타나 주드와 그의 여친을 괴롭히는데.

우리 외할머니는 밖에서 물건이라도 주워오면 눈에 쌈짓불을 켜고 뭐라하신다. 밖에 나온 물건은 함부로 집으로 들이는 게 아니라고. 나도 그 의견에 강력히 동의하는 바이다. 평소 '이야기 속으로' '토요미스터리 극장'을 즐겨 봐왔지만 솔직히 그런 신기한 이야기는 웬만하면 내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니까. 가급적이면 긁어 부스럼을 남기지 않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배달된 해진 양복 한 번 입었다가 밤낮 안가리고 나대는 귀신에 시달리는 주드를 보니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

내가 공포에는 둔감한 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무섭지가 않았다. 몇가지 이유를 대보자면 우선 주인공이 귀신할배를 발톱에 낀 때마냥 별 거 아니게 생각한다. 평소 오컬트적인 게 취향인 주인공이긴 하지만 명색이 주인공이 이렇게 귀신을 만만하게 생각하는데 제 삼자인 독자가 두려움을 느낄 수가 있겠나. 그리고 또 하나, 얘기가 길다. 소재나 전체적인 큰 줄거리만 보자면 긴 장편보다는 분량을 반으로 줄였으면 얘기가 좀 더 빠르게 전개돼서 속도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냥 주인공 근처를 시종일관 배회하며 괴롭혔다면 귀신과 좀 더 가까운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에 나오는 노인귀신은 생전에 아끼던 트럭을 죽어서도 직접 운전해 가면서 주인공을 쫓아다닌다. 주인공과 직접적인 신체접촉보다는 주변사물과 사람을 이용해 내 손 더럽히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는 서양귀신의 프로정신은 이해하겠으나 좀 더 강렬한 두려움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심령 어쩌구하는 '말'로 하는 저주는 별로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역시 귀신은 직접 몸을 던져 우물이라던지 다락방이라던지 티비라던지 몸소 걸음하여 주인공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한 맺힌 동양귀신이 제일이다. 그 두려움 말로 못하지. 서양귀신은 자꾸 인물들하고 진짜 대화를 나누려고 해서 재미가 없고 따분해. 자고로 진정한 공포를 안겨주기 위해서는 입 닫고 나만의 언어를 중얼대며 인물들과 소통따위는 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처리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게 미덕이지.

작가인 조 힐은 스티븐 킹의 둘째 아들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명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평가받는 게 싫었는지 그는 킹의 아들로 부각되는 걸 꺼려한다고. 이번에 읽은 하트모양상자는 낯익은 소재에 비해서 후에 전개되는 결말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있었다. 다만 그 전에 전개됐던 소소한 이야기들은 계륵같은 느낌이 들었다. 없으면 더 좋았을 것 같고 막상 통째로 버리자니 어딘가 허전한.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섭지가 않더란 말이지.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