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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12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 E.M.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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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나와는 상관없는 그 곳을 찾아 떠난다. 여행이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자유,아닐까? 내가 여행을 떠난 곳이 외국이라고 치자. 나는 그곳에 도착한 여행자요, 이방인이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살아가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자유를 느낀다. 바로 그곳의 삶을 아무 이해관계 없이 속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에게는 치열한 삶이겠지만 이방인인 우리는 얽매이고 걸리는 게 없기에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행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마음의 평화! 그리고 자유. 이상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는, 맨날 상상만 하고 앉아있는 M씨의 소견이었음.

100여년 전의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들도 현실을 잠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까? 여기,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다가 이탈리아 여행을 결심한 젊은 미망인 릴리아가 있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동반자는 이웃인 20대 초반의 캐롤라인 애벗양. 이탈리아로 떠나는 며느리를 배웅하면서 시댁식구들은 릴리아를 걱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신경 쓰이던 일을 처리한 것 마냥 후련함을 내비친다. 그런데 얼마 후, 릴리아가 이탈리아의 꽃미남 연하남과 결혼을 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시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지고 며느리에게 배신감마저 느낀다. 시동생인 필립을 이탈리아로 급히 보내보지만 릴리아는 이미 이탈리아의 청년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 일은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적응하지 못한 릴리아는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영국에 있던 前시댁 식구들은 릴리아가 남긴 아이를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필립과 그녀의 누이 해리엇, 그리고 릴리아의 결혼 실패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 캐롤라인 애벗양이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다.

소설은 20세기 초, 영국의 보수적이고 위선적인 모습과 그와는 반대로 본능적이고 속박에서 자유로운 이탈리아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갑갑한 현실을 벗어난 필립과 캐롤라인은 이탈리아가 안겨주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곳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캐롤라인은 필립에게 영국에서는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똑똑하고 현명한 감춰진 그녀의 내면을 보여준다. 이런 캐롤라인에게 필립은 사랑을 느끼지만 내색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만 한다. 특히 이런 필립의 모습은 결말부분에서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뒤통수를 맞는다. 그러게 사랑은 재고 감상만 하는 게 아니라니깐.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겼어야지.

사실 책을 읽고 나서는 감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고 일어나니깐 그래도 할 말이 술술 생각나는 걸 보니 아주 생각없이 본 건 아니었나 보다. ‘전망 좋은 방’에 이어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까지 E.M. 포스터의 전집중 이제 두 번째 권을 끝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둘 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었고 전작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로맨스, 후작은 이탈리아에서 끝난 로맨스를 다룬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E.M. 포스터는 이 책을 26살에 썼다고 한다. 나는 그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삶의 철학을 완성하고 소설에 담았다는 것에 존경스러움을 느낀다. 그의 지성이 부럽기도 하다. 단순한 줄거리 나열이 아닌 인물들의 대화속에 담겨진 그의 인생철학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6살. 게다가 첫 장편소설. 혹시 정말 천재가 아니었을까?

분량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로 빠른 속도로 읽는다면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내용은 큰 충격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편이라 읽고 나서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처럼 자다 일어나니 할 말이 막 생각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데 제목 참 멋지지 않은가? 블로그 이름을 이걸로 바꿀까도 생각중이다.(^^:) 제목에 혹해서 E.M. 포스터의 전집중 우선순위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어떤 곳인지 꼭 가봐야겠다. 천사들이 왜 발을 딛기 두려워하는 곳인지 알아야겠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