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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9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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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대학에 재학중인 왕치아즈(탕웨이)는 짝사랑하는 광위민(왕리홍)이 이끄는 극단에 들어갑니다. 중일전쟁을 다룬 연극은 전쟁에 무뎌진 홍콩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연극에 참여했던 여섯명의 친구들은 다가오는 여름 방학에 진짜 애국을 해 보기로 결의하고 위험한 도전을 감행합니다. 친일파 이(양조위)를 처단하기로 결의한 일행은 연극의 히로인이었던 치아즈에게 이를 유혹하게 합니다. 거의 넘어왔다고 판단될 쯤 이는 상하이로 가게 되고 예기치 못한 살인까지 한 일행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그리고 3년 뒤 상해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고 치아즈는 다시 한번 '이'의 암살을 위해 그에게 접근합니다.

이번에 양조위가 연기한 '이'라는 인물은 그동안 연기해 온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냉혈한입니다. 조국을 배신해 일본에 충성하면서 독립군을 잔인하게 고문하죠. 주변사람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사람입니다. 인터뷰에서 양조위는 그가 연기한 '이'가 자기 부정적인 캐릭터라고 밝혔습니다. <색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양조위의 선한 인상(개인적으로 저는 양조위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라고 생각)으로 연기하는 '이'의 포커페이스입니다. 그는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을 치아즈(탕웨이)에게 던집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왕치아즈를 연기하게 된 탕웨이는 얼굴이 낯선 신예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매 장면마다 도전적이고 과감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여배우로서 파격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감한 정사씬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연기를 통해 이를 속여야 하는 이중연기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복잡한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순진했던 여대생에서 매혹적인 스파이로 변해가는 치아즈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신인으로서는 안정적이고 뛰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지만 호감을 쉽게 불러 일으키는 청순하고 깨끗한 얼굴이죠.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상이 치아즈의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940년대 중국 상해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라고 합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생기를 잃어버린 상해의 어두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죠. 독립군을 고문하는 양조위의 일적인 모습은 배제하고 정의감과 애국심만으로 어설프게 일을 시작한 아마추어 저항세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어찌된 일인지 그들 배후에 있는 핵심세력은 치아즈에게 모든 걸 맡기고 그녀에게 지시만 내리는 안일한 세력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의를 위해 치아즈의 희생을 당연하게 용인하는 모습은 집단이기주의라고 정의 내려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치아즈의 진짜 바람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정말 정의로운 사람들인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정의를 말하는 영화는 아니지만요.

양조위와 탕웨이의 베드씬은 파격적이었고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보여줍니다. 물론 어느정도 선은 지키지만 그동안 극장에서 보아온 영화들보다는 더 솔직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야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보여줄 것 다 보여주는 솔직한 영화지만 스크린 속의 두 남녀의 모습은 왠지 슬퍼보였습니다. 거칠게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장면들이었지만 솔직히 그런 장면들에서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배우들의 표정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척 진지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와 치아즈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시대가 나은 비극을 안고 살아야만 했던 안타까운 인물들이죠. 서로가 속고 속이는 의심과 증오, 배신이 난무하던 불운한 시대에 그들이 나눈 섹스는 그래서 더 솔직해 보였고 그것만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 영화의 테마곡 Wong Chia Chi's Theme는 엔딩크레딧 때에도 나오는데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빈 극장 안에서 혼자 이 곡을 듣고 앉아 있으니 너무 아련하고 쓸쓸한 곡이었습니다. 혼자 분위기 잡다가 나왔습니다.
 

인상적인 장면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