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9.02 새의 선물 * 은희경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렸을 때 할머니의 시골 집에서 새벽녘에 눈을 떠 문을 열어본 기억이 난다.(어릴 때는 새벽에 눈 뜨는 게 가능했다^^) 그때 본 아침이 밝아오는 그 파란빛의 색깔은 어떤 색으로 표현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오묘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주었었다. 도시에서 느끼는 새벽과 시골에서 느끼는 새벽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이곳에서는 절대 재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진희가 자란 그 작은 읍내가 나는 무척 부러웠다. 나는 책에서 그려지는 그런 정을 느끼지 못했다. 삭막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자연과 함께 했다는 기억은 고작 겨울에 뒷산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은 정도다. 진희가 보아온 그런 낭만적인 추억이 내겐 없다.

<새의 선물>의 진희는 통창력 있고 호감가는 관찰자였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그들에 대한 진희의 해학과 조소도 담겨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연민이 녹아있었다.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열두살,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면서 부모와 헤어지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강진희' 그 일년의 시간동안 진희 주변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진희는 성숙함을 넘어선 성인(聖人)같았다. 자신의 상처를 냉정하게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며 오해 보다는 늘 이해가 먼저인 배울 점 많은 사람이다. 내가 부족한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향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머리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데 마음으로는 그게 안된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진희는 그녀의 통찰력으로 날카로운 분석을 끝마치고 그들의 다른 이면을 볼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배려란 상대에게 '내가 배려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있지만 진짜 배려는 자신이 배려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그 순간만큼은 상처 받지 않고 지나가게 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진희의 성장소설이기도 하지만 진짜 성장을 하고 있는 건 진희의 이모가 아니었을까. 고생도 모르고, 인생에 걱정거리가 드물었던 이모에게 조금씩 삶의 시련이 닥친다. 진희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철 없고 귀엽다는 인상까지 준 이모에게 시련과 상처가 생기고 그 일들이 아무는 과정에서 점점 성숙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머리로는 외할머니와 맞먹는 해탈을 한 진희에게 그녀는 사랑의 라이벌이자 말동무요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파악하기 쉬운 관찰상대이지만 상처 받지 않고 인생 평탄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렇게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마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 바로 진희 이모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제일 안타까웠던 건 진희의 이런 대견함과 섬세한 배려를 몰라주는 진희 주변의 모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게 돼있고 그 기억들은 새로운 사건들에 덮힌다. 시간은 흐르고 누구나 열두살 진희로만 남아있을 수는 없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늘 성장하고 있다. 겉모습만이 아닌 내면의 성장까지도 바랄 수 있다. <새의 선물>은 따뜻함과 날카로운 시선이 교차하는 소설로서 우리말이 주는 해학적인 재미와 감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열두살, 아니, 지금도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강진희씨의 성장소설이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