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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7 스모크 (Smoke)

Media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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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라는 도시를 생각하면 다양함이 떠오르는데요. 그곳은 소위 뉴요커라 불리는 멋쟁이들만 있을 것 같고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늘 바쁜 시간에 쫓겨 노점에서 파는 칠리핫도그를 길거리에서 한입 베어 먹어도 그 자체로 활력이 도는 것 같고 마놀로블라닉과 지미추의 구두처럼 화려한 구두만 신고 다닐 것만 같아요. <SATC>부터 시작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어글리 베티>처럼 뉴욕의 화려함을 담은 드라마와 영상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작가 폴 오스터가 '뉴욕'을 그리는 방식은 그래서 특별해요. 오스터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뉴욕을 배경으로 하지만 의식하고 읽지 않으면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그곳이 뉴욕인지 금방 잊게 돼요. 우리에게 더이상 뉴욕이라는 도시는 낯선 도시가 아님에도 어쩐지 그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뉴욕'은 낯설기만 하거든요. 그의 작품 속, 뉴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밑그림과 군상들도 매우 다양해서 때로는 밝게, 때로는 우울하게, 그렇지만 인간적인 연민을 담아 그려내죠.

폴 오스터가 각본을 쓴 영화 『스모크』는 뉴욕 브루클린의 시가 상점을 중심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예요. 다섯명의 인물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느슨하게 걸쳐져 있는 듯해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단단해지는데요.『스모크』의 첫번째 인물 폴 벤자민은 직업이 작가예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폴 오스터의 영화 속 모델로 보여져요.) 그는 인물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3년 전, 강도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죠. 흑인소년 라쉬드는 우연히 말려든 강도사건으로 쫓기는 상황이에요. 능청스럽고 수다스럽고 때론 당돌해 보이기도 한 이 녀석은 실은 두려움을 애써 감추기 위한 아이다운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아가며 담배도 피워보지만 그의 능청스러움은 어른들에게는 그저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에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여성인 '루비'는 애꾸눈의 금발미녀예요. 속썩이는 딸 때문에 피츠버그에서 차를 몰고 브루클린으로 온 당찬 어머니죠. 시가 상점의 주인 오기와는 젊은 시절 사연이 좀 있는 여인이에요. 거의 남자들만 나오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정말 여우처럼 행동해요. 언제 눈물을 보여줘야하는지 아는 여우계의 고수라고 해야할까요. 정비공 사이러스는 오래 전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의 왼팔은 그 사고로 갈고리가 달려있지요. 그는 실수를 평생 기억하라고 신께서 자신에게 내린 형벌이라 생각하고 그 후로 오랫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시가상점의 주인 '오기'는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감초같은 인물인데요.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 하고 때로는 고약하게도 보이지만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쓴 소리 한번 제대로 못하는 속마음 따뜻한 중년의 아저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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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아픔을 확인하고 치유하는 영화들은 무척 흔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억지로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려하지 않아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상대의 슬픔에 안타까운 마음을 보이지도 않아요. 속이 상하는 일 때문에 '담배' 한개피 피우려는 친구의 곁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죠. 서로의 얼굴에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을 수 있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훈훈한 장면이었어요. 담배가 참 맛있어 보이던데요. 저래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건가 궁금증이 일더라고요.
 
매일같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구도의 사진 한 컷을 찍는 오기의 말처럼 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전혀 다른 걸지도 몰라요. 어제 피운 말보로 한갑은 오늘 피우는 말보로 한갑과는 전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들에게 '담배'는 비밀을 털어놓을수 있는 친구처럼 늘 옆에 있는 친근한 존재죠. 그들이 짊어진 인생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의 무게도 전혀 다른 것이겠죠.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임산부, 청소년을 막론하고 전부 담배를 피워요. 장면마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나오죠.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바탕 진창 욕을 퍼부은 다음 옆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들의 화해의 방식은 어쩌면 남성들의 방식일지 모르겠네요. 사실 이 영화는 거의 남성적인 영화라고 봐도 좋을 거예요.^^;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인물들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 속 오기의 카메라를 닮았어요. 같은 것처럼 보이는 4000여장의 그 기록사진에 갖는 오기의 특별한 애정처럼요. 이 영화의 날씨를 묻는다면 화창한 봄 날씨같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삶의 버거움이나 외로움도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라면 좋겠어요. 따뜻한 영화예요,『청춘스케치』의 트로이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담배와 커피, 그리고 5달러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도 있었네요.^^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