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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1 웃음의 나라 * 조너선 캐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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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무살은 대단히 심심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운명적인 시절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찾아 읽기시작한 때도 그때였고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었다. 비록 가난한 재수생이었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음을. 나의 책이 하나하나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세상 누구보다 부자가 된 것 같았고 그 책들을 두고두고 꺼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다.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존 쿳시, '비둘기'의 파트리크 쥐스킨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마르케스 '뒤마클럽'의 아르투로 레베르테 '해변의 카프카'의 무라카미 하루키, '반짝반짝 빛나는'의 에쿠니 가오리, '적의 화장법'의 아멜리 노통브, '칼의 노래'의 김훈, '오페라의 유령' '앵무새 죽이기' 또 어떤 책들이 있더라. 아무튼 이제 막 작가들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한 저 시절은 그래서 특별하다. 그리고 앞으로 더 특별해질 것 같다.

이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는 '움베르토 에코'할배와 '존 쿳시'다. 난 지금도 장미의 이름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그 신비로운 분위기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윌리엄 신부와 그를 따르는 아드소, 그리고 거기 한명의 심복이 또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쓴 수도사 한명이 있었으니 바로 '나'다! 난 그들을 상상하며 실은 한명의 인물을 더 심어놨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수도원의 곳곳을 누비며 사건을 풀어가려 했었다. 상상하는 재미가 너무 컸던지 나는 그 후로도 틈만 나면 장미의 이름을 들여다봤고 이 책이 나의 것임에 너무 감사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는 동안 치안판사가 느꼈던 고뇌가 나에게 너무 깊게 와닿아 잠못 이뤘었다. 책을 다 읽어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페이지를 아껴 읽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에게 운명의 책을 꼽으라면 난 이 두권의 책을 꼽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두편. 기약없는 먼길을 떠날 일이 생긴다면 나는 반드시 이 두권의 책은 꼭 챙겨가리라. 음하하.

<웃음의 나라>의 토머스 애비에게도 운명의 작가가 있다. 어린시절 그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동화작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결심한 토머스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마셜 프랜스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그의 우상 마셜 프랜스에 대한 모든 것을 수집하기 위해서. 마셜 프랜스의 희귀도서를 구하는 동안 토머스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색스니라는 이름의 그녀 역시 마셜 프랜스의 팬이다. 공통점이 있는 두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색스니는 토머스의 작업을 돕기 위해 그와 함께 마셜 프랜스가 거의 평생을 살았던 게일런이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프랜스의 딸 안나의 도움으로 프랜스의 전기를 집필하지만 마을에는 토머스와 색스니는 짐작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난다.

고백하자면 이 소설의 초반은 지루했다. 흡입력도 떨어지고 동화작가 '프랜스의 팬'인 토머스의 이야기는 별로 흥미롭지가 않았다. '유명인 배우 아버지를 둔' 토머스의 이야기도 그다지 큰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토머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중반부쯤 가서야 조금의 신호들이 보인다. 뭔가 사건이 터질 거라는 거.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부분들은 전주곡쯤 된다는 거. 잠꼬대 하는 강아지의 등장은 이제 막 이 책을 덮으려는 순간 나의 시선을 붙잡는 계기가 된 부분이다. 읽으면서 도대체 이 책은 장르가 어떻게 될까 궁금했었는데 조금 감을 잡을 수 있는 부분. 3부는 SF 판타지 분위기고 결말은 호러쪽으로 기우는 듯. 훈훈한 동화작가의 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예측하지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이끈다. 챕터마다 다양한 옷을 갈아입는 이 책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종잡을 수 없다는 거. 그리고 옷을 아주 자연스럽게 갈아입는다는 거. 분위기가 180도 바뀌지만 그 부분에서 어색하다거나 억지스럽다는 건 잘 느끼지 못했다. 다만 나는 주인공이 왠지 정이 안 갔다. 웬만하면 이야기의 주인공과는 정이 드는 편인데 이 책의 주인공 토머스는 찌질하게 느껴졌다. 살짝 파파보이같은 이미지였다. 유명인 아버지의 그늘이 싫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그 그늘에 알아서 찾아들어간다. 소심하면서 대단히 입맛이 까다로운 자기편의주의자같은 느낌이라 끝까지 주인공한테 정이 안 갔다. 주인공이 싫어진 결정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왠지 책의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참는다. 차라리 색스니가 토머스보다 훨씬 괜찮다. 센스있고 감정표현 솔직한 그녀의 성격이 더 맘에 들었다. 그래서 난 소설의 결말이 살짝 맘에 안 든다.

책을 읽고나서 포털사이트에 키덜트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나도 살짝 그쪽과라 어린시절의 추억을 어른이 돼서도 지켜나가는 토머스와 색스니를 보며 왠지 그들도 키덜트가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네이버에서 키덜트를 검색하면 재밌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바로 '오타쿠'다. 둘다 외래어이긴 하지만 키덜트와 오타쿠가 주는 어감은 정말 다른데. 우리나라에서 너 좀 "오타쿠같아"라고 놀리면 진짜 오타쿠도 화를 내던데. (우리나라에서는 원래의 의미보다 '전차남'이미지로만 생각하는 거 같다.) 전차남도 키덜트인가? 에이 너무 확대해석하지 말아야겠다. 그냥 연관~검색어일 뿐이야. 검색을 조금 편리하게 해주는. (아니 실은 그쪽으로 생각을 유도하는..) 오타쿠가 키덜트일지는 몰라도 키덜트가 모두 오타쿠인 건 아니니까.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