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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7 외딴집 *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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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미여사의 시대극 미스터리 소설이다. 역시 시대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능숙하게 그려내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백지뿐인 무한의 공간에 글로 이야기를 가득 채워나간다는 일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 속에는 단지 활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움, 사랑, 희망, 연민, 희생, 암투, 기만, 절망처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오만가지의 감정들을 품고 있으니 새삼 '요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부의 재정일을 담당했던 '가가님'이 처자식을 칼로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변방의 마루미번으로 유배를 오게 된다.(에도시대는 쇼군이 다스리는 '막부'와  영주들이 다스리는 지방의 여러 '번'으로 나누어지는 막번체제였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이곳은 어업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 악령이 씌었다는 가가님이 유배를 오신 것이다. 평화로웠던 마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하고 다잡았던 마음들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불운한 일들로 인해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마을은 점점 폐허가 된다.

미미여사답게 다양한 군상들을 등장시켜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는 '인간' 감정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높으신 분들에게는 대의가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고 그저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에게는 개인에게 닥친 불행의 근원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바로 유배온 '가가'님이다. 그가 지은 죄의 진상이 무엇이건 그는 이미 마을사람들에게 공포의 근원으로 인식되어 왔고 사람들은 그 생각이 오해일지도 모르는데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마루미번의 모든 불행은 외부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가가의 탓으로 너무 쉽게 돌려졌다. 그리고 복잡한 정치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마루미번의 중진들은 묘책을 생각해 낸다. 가가를 마루미번의 '신화'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의 싹을 틔우고 오해와 갈등이라는 기름을 붓는다. 절망의 불을 붙이면 두려움은 혼란이라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활활 타오른다. 불을 다시 꺼야만 하는 인간은 고민한다. 저 열기가 제 뿔에 지쳐 힘을 잃어갈 때까지 놔둬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싹을 심어야 하는지. 마루미번의 중진들은 사람들의 혼란 속에 '가가님'이라는 싹을 틔우려 한다. 악령으로 불리며 마을사람들의 두려움의 근원이었던 자를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신화'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다. 천둥벌거숭이마냥 호들갑스럽게 날뛰는 인간을 얌전히 자리에 앉혀놓는 것도 결국 인간이니 말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현명하다. 갈등도 낳지만 화해의 싹도 틔운다. 그래서 늘 한쪽에서 실망을 보면 다른 쪽에서는 희망을 보여주는가 보다.

나는 미미여사를 따뜻한 글을 쓴다고 말해왔던 것 같다. 그녀는 정말 호락하지 않은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런데 마치 마법사가 마법의 파우더를 뿌리듯이 그녀는 이야기 속에 따뜻함이라는 파우더를 뿌려놓는 것 같다. <외딴집>에서 바보라 불리던 아이 '호'는 운이 좋게도 따스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천애고아인 아이는 냉정한 어른들의 천대와 떠돌이 생활에 지쳐있었지만 아이의 맑은 눈을 알아보고 온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여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호가 사람들과 이별해야 할 때마다 나도 호처럼 아쉽고 안타깝기만 해서 눈을 지긋이 감았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