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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9 엔돌핀 프로젝트 * 박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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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첫장에서부터 '죽음' '단식' '옥탑방' '폭염'이라는 단어가 이어진다. 40대 후반의 '가장'이었던 아저씨의 고백이 머리를 무겁게 짓눌러온다. 내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의 염세주의적인 고백들,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찼다. 그렇지만 제목이 <엔돌핀 프로젝트>다. 즐거움이 연상되는 엔돌핀이라는 제목으로 겉모습을 가장한 실은, 우울한 이야기의 소설인데 말이다. 극단의 고통에 치닫게 될 때도 엔돌핀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고통과 엔돌핀이 결코 대척점에 있는 아주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한없이 우울해 보이는 아저씨의 삶을 내가 뭐라 재단할 수는 없다. 적어도 아저씨는 내 나이의 곱절의 인생을 살았고 결혼도 했었고 (물론 이혼도 했지만) 아이도 있다. 번듯한 직장에 취직도 했었고 그렇게 집값이 비싸다는 서울 땅에 내집장만도 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함 그 이상을 이루었던 한 남자의 삶을 아직 이 모든 걸 해보지도 못한, 하룻강아지같은 내가, 그의 인생에 대해서 어쩌네저쩌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 40대 남성의 '평범'한 삶이 이런 모습이라도 현재의 나는 이런 것조차 대단해 보이고 쉽게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안개 속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아내였던 여자와 직장, 그리고 번듯한 집을 잃었다. 이십대 후반부터 아저씨의 현재까지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에 숨을 참아가는 연습을 하며 서서히 죽음으로 다가간 걸까. 그러는 동안 아저씨는 현재와는 너무 멀어보이는 오래전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희구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우물에 빠져 죽은 남동생, 자전거 뒤에 태워서 등하굣길을 함께 했던 풋풋했던 첫사랑, 수줍음 가득했던 아내와의 첫만남. 그리고 이제 살아갈 이유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한 남자의 삶을 바라보며, 결국 이렇게 얇디얇은 소책자같은 만만한 분량의 이야기를 읽고 울어버렸다. 인생에서 저절로 되는 건 없다.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 예전에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조바심을 느끼면서 사는 요즘에 이 책을 만났기 때문일까.

옛사람들이 말하는 '지천명'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아저씨는 모든 걸 잃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해보라고 말하는 건 용기를 주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느끼는 거지만 아마도 그때 쯤은 청년시절 품었던 열정과 용기만큼 힘을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힘들게 800여미터 장거리 코스를 완주했는데 미처 기록을 재지 못했으니 물 한잔 먹고 다시 뛰라고 하면 좀 전에 냈던 스퍼트만큼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일단 다시 뛰는 것조차 싫을걸.
 
물론 늦은 나이의 실패가 꼭 비관적이라거나 희망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견디기 수월찮은 일은 아닐 거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아저씨를 결정적으로 죽음으로 인도한 건 딸의 원조교제였다. 그의 희망이자 전부였던 딸의 현실을 목격한 아저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왠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이 라틴어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저씨는 향기를 남기고 죽었단다. 추억을 곱씹으며 추억속 인물들의 현재의 삶을 가슴 아리게 목도하고. 아마 아저씨가 남긴 향기는 애잔한 금잔화 향이겠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남은 자들은 가끔 도의적인 책임을 생을 등진 그들에게 돌린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어도 그건 너무 쉬워 보인다.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자유인데 '죽음'의 방식에는 자유를 주지 못하는 걸까. 답을 정할 수 없는, 그저 의문으로 남기는, 여기까지가 딱 좋은 어정쩡한 질문 하나 남기며 키보드에서 이만 손을 뗄까한다. 가을이라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 한다. 이러다간 잠도 못 자겠다. 책을 덮고 문득 브라이언 이노의 By this river라는 곡이 듣고 싶어졌다.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에는 우울한 음악이 딱이겠거니 싶어서.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