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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0 아카쿠치바 전설 * 사쿠라바 가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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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경제 호황과 침체, 전후세대와 현대세대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의 차이를 아카쿠치바 가문의 3대를 이어온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제철업으로 유명한 돗토리현 베니미도리촌(村)의 마을 우물가에 버려진 '산(山) 사람의 아이' 만요는 공장 노동자인 젊은 부부의 손에 거둬지고 운명처럼 아카쿠치바 가문의 큰 마님인 다쓰의 눈에 띄어 스무살 때 아카쿠치바 집안의 며느리가 된다. 미래를 보는 영통한 능력이 있던 만요와 제철소를 운영하는 아카쿠치바 가문은 전후 일본의 경제호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조업의 발달과 한반도에서의 6.25 전쟁 발발로 전쟁특수까지 누린 일본은 패전국가라는 오명에서 어느정도 자존심을 회복하며 도쿄올림픽개최, 오사카 만국 박람회 개최등으로 비슷한 시기 가난에 헐벗고 있던 주변국들과는 다른 신흥부자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만요와 남편 요지 사이에는 네명의 자식이 있는데 그 중에 둘째가 아카쿠치바 게마리다. 싸움으로 베니미도리를 넘어 히로시마까지 평정하는 게마리는 1970,80년대 폭력과 불량 문화의 한가운데서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지역을 대표하는 폭력써클의 두목으로서 남다른 책임감을 보여주는 여인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써클에서 화려하게 은퇴한다. 그리고 만화가로 제2의 인생을 산다. 그녀 세대는 일본의 경제호황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그 덕을 톡톡히 본 세대다.


게마리와 데릴사위 요시오 사이에서 태어난 이 소설의 화자, 아카쿠치바 도코는 전후 일본세대인 할머니 만요세대와 게마리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다. 만요세대는 젊음을 바쳐 일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자신들보다는 좀더 편안한 인생을 살길 바랐다. 그들의 자녀세대인 게마리는 한때 폭력문화를 만들어 사회문제를 일으키지만 부모세대의 땀으로 일군 경제의 황금기와 밀려 들어오는 서구문화의 풍요를 즐긴 세대들이다. 이들 다음에 일본의 오랜 경기침체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국가보다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신세대인 도코 세대가 등장한다. 부모세대와 할머니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는 세대, 경쟁에 익숙하고 경쟁의 패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대, 사회적인 이상도 없고 이데올로기도 뚜렷하지 않은 세대다.


'아카쿠치바 전설'은 할머니 만요의 세대가 주인공이었던 시대를 신화의 시대라고 표현됐다. 원시적이지만 전설에 대한 신비함이 남아있고 그것을 믿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미신적인 믿음으로 개인의 인생까지 결정할 수 있었던 시대,전후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세대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이어서 등장한 게마리 세대가 혜택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만 하는 부모세대 밑에서 한때 일탈을 꿈꾸면서 폭력과 이지메 등으로 얼룩진 사회문제를 야기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자식 세대인 도코의 세대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바통은 이들에게 넘어온 것이다.


아카쿠치바 가문의 그녀들이 걸어온 인생의 여정 속에 전후 일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일본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제조업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고 그 자리는 넥타이 부대로 불리는 화이트칼라 자식세대들이 이어받았다. 이들은 현재 일본의 기성세대들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고 고생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자식 세대가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다. 기존의 기성 세대들과는 상반된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이들이 만들어 가는 일본은 지금보다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소설에는 그런 차이의 출발점이 되는 세대간의 미묘한 차이를 세 여인이 삶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로 보여준다. 만요세대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중흥을 위해 그들의 젊음을 기꺼이 바쳤다면 손녀인 도코세대는 그런 희생에는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그리고 이제 한 세대가 마감하고 있다. 경제대국을 꿈꿨던 일본은 그 꿈을 이미 오래전에 이뤘다. 앞으로를 꾸려갈 일본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지향하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가꿔갈지, '물리적'으로만 가까운 이웃나라의 젊은세대로서 흥미있게 지켜보고 싶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