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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3 잘 가라, 서커스 *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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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세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왜 망설이시나요? 왜 표현하지 않으시나요? 무엇이 두려우신가요? 말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상대에게 마음이 전해진다고 믿는 거죠? 마음이 얼마나 넓은 데라고 모든 걸 품고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건가요. 상처를 마음에 담지 마세요. 외로움을 품지 마세요. 스스로를 고통으로 몰아가지 마세요. 마음에게도 여유를 주자고요. 계속 그렇게 마음에만 담았다간 언젠가는 포화상태를 끝내버리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요.

당신들은 행복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피하기만 하고 감추려고만 하고, 왜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리는데 급급했나요. 당신들은 웃을 수 있었어요.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요. 당신들 탓이에요. 당신들이 당신들의 인생을 그렇게 외롭게 만든 거라고요. 당신들이 품고 있던 따스한 온기를 왜 감추시나요. 서로에게 기대고픈 마음을 왜 그렇게 숨기셨나요. 겉으로 드러나는 당신들의 모습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들은 행복할 수 있었어요.

서커스는 어느 순간부터 꽤 슬프게만 보여요. 목숨을 담보로 한 아슬아슬한 곡예에 웃을 수가 없어요. 우스꽝스러운 삐에로 분장 뒤에 가려진 그 슬픔의 그늘을 헤아릴 수야 없겠죠.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관객에게 웃음을 주어야 하잖아요. 그래요. 당신들에게 필요한 건 당신들이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그 무대라는 거. 거기는 당신들의 세상이죠. 당신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당신을 믿고 있고 당신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그 시선. 때론 이 시선 때문에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무대로 오르는 그대가 있을 거예요.

혹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저는 아직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들에게 평생 남을 상처를 안겨주지 않기 위해 처형장으로 끌려 가는 아버지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씩씩하게 행진하지요. 아들을 위해. 아들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그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서커스의 주인공처럼 연기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때문에. 그럼에도 그는 연기를 해야했어요. 그 자신을 위한 게 아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때였던 거 같아요. 더이상 우스운 게 우스운 게 아님을 알았을 때가.

소중한 것을 깨닫기 위해 너무 멀리 돌아가지 마세요. 너무 멀리만 바라보지 마세요. 가까운 곳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세요. 당신을 기다려줄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에요. 익숙해서, 늘 옆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미처 몰랐다고요? 신이 정말로 있다면 어쩌면 그 사람들은 당신 너무 외롭지 말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라고 당신에게 예정된 사람들일지 몰라요. 그러니 사랑해주고 아껴주세요. 당신이 품고 있는 온기를 그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꼭 안아주세요.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