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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8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6)

개발만이 인간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이라면,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게 믿고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과학의 눈부신 업적과 발전이 인간에게 편리한 생활만을 안겨준 것일까. 과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전지구적인 기상 재앙에 맥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결코 먼 미래의 일, SF영화에서나 그럴 듯하게 써먹을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안타깝지만 현재진행형이다.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며 과학의 눈부신 척도를 얼마나 실생활에서 가까이 누리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삶의 질과 수준을 논하는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량을 포기하고 과학을 택했다. 땅이 좁고 수출할 것은 기술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개발에 뛰어들고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공업에 뛰어든다면 가까운 미래에 전세계적인 식량문제가 닥치지나 않을까. 농사 짓는 땅이 부족해지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먹거리도 부족해질 것이다. 이렇게 풍요롭고 먹거리가 넘치던 곳에 기상재앙 뿐만아니라 식량재앙까지 몰아닥친다면 인류는 현명하게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을까. 과학만이 전부일까. 농업에 끼친 과학의 영향을 생각해 보라면, 어째서 인류는 GMO상품을 두손 모아 반기지 않는지부터 설명해 주길 바란다.

인간이 진화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진 못하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불과 1년전의 사진이 촌스러워지고 현재의 모습이 나름 세련된 모습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깔끔한 모습을 비가 오지 않아 쓸 물이 없어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이 올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이제 말로만 듣던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우리의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현명한 인간들은 과학을 기술의 발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에 까지 지구를 위협하고 자연을 짓밟으며 기고만장해졌는지 객관적인 수치를 측정하는데 이용했다. 그결과 우리는 향후 인류가 어느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불안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보고서들과 마주할 수 있다. 인류의 일이지 내 개인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거야 말로 넌센스다.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거 자체를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쁘다고 읍소한다. 뭐.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그런 걱정을 시간 단위, 아니 분단위로 하게 될지도 모르니 하던 생각 쭉 하시면 된다. 늘 하시던 생각들이니 어색해 하실 일은 없겠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냉소적인 반전으로 마무리를 하는 단편들이 주를 이룬다. 순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치 못하는 순수애의 동경들. 하지만 동정적이다. 결국 인간의 절망에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건 같은 인간이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현명하게 이끌 수 있다. 인류의 절망적인 현실을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혹은 외면하는 인간들이 대다수지만 분명 희망은 있다. 때로는 인간에 대한 의지를 비웃고 소름 끼칠 정도로 기만하는 인간들도 있지만 결국 서로를 바라보며 의지하고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순수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어떤 인위적인 요소도 이해하지 못하며 불결해 하는 모습과 절망에 넉다운 되어버린 젊은이들의 오해와 고통스런 죽음을 그린 이야기들을 만나보며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부끄러웠고 절망스러웠고 안타까웠다. 휴양지다 뭐다 해서 '무인도'도 줄어가는 마당에 그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서로에게 고통을 주기보다 희망의 근거가 되자고 하면 무척 공허한 외침일까. 허망하고 거창하고 무엇보다 망상처럼 여겨지니 씁쓸할 뿐이다.   

행복과 절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후부터, 그 의미와 실체 또한 추상적이기 이를 데 없지만 절실하게 행복과 마주하기 위해서 절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기심을 아주 기민하게 이용하는 인간이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22세기형 아포리즘도 있지 않은가. 임무를 다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 누을 자리로 돌아오는 새들의 최후가 비참해 보이지 않고 아름답게 보인다. 마지막을 함께한 동료들과 파도에 쓸려나가 넓은 바다 위를 부유하다 하늘을 비상하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물고기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저들의 특별한 최후가 전혀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 역시 새들처럼 세상의 끝에 찾아가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조금씩 그 끝에 다다르는 '운명'이라면 행복할 수 있을까. 지치고 절망적인 불행한 삶이었다 해도 그 마지막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라면. 

대단히 냉소적이고 희망보다는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들로 가득한 불행한 이야기들이지만 로맹 가리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희망을 말한다.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들을 비웃거나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애로운 어른의 회초리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순수함을 욕망하지만 기만하기 쉬운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들이 담겨 있다. 과학 발전을 혜택이라 여기며 점점 비극으로 다가가는 인류의 운명을 어찌하면 좋을까. 문명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버리고 타인에 대한 배신과 이기심이 주는 당장의 배부름을 환희라 여기며 부도덕에 물들어가는 인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래도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인간이 가진 사랑과 동물적인 본능이 아닌 이성적인 본능에 의한 현명한 지혜다. 자연이 뿜어내는 한숨과 인간에게 가하는 스케일 큰 투정(환경재앙)을 읽어내는 영민함이다. 결국 희망은 바로 당신, 우리 모두인 것이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