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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1 바람의 화원 * 이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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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 생도청 교수인 김홍도는 화원 신한평의 아들인 생도 신윤복의 예사롭지 않은 그림을 눈여겨 보게 되고 윤복에게서 예인으로서의 존경과 질투, 그리고 인간 '윤복'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품게 된다. 중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도화서 화원이 된 윤복은 정조의 하교로 홍도와 함께 조선 백성들의 삶을 그려 왕에게 보여준다. 한편, 정조는 두 화원에게 10년 전 도화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라는 밀령을 내리는데.

국사 교과서에 조선 후기 근대사회의 태동편에서 미술분야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에게 팩션의 색을 입혔다. 그림의 초보도 알아볼 정도로 너무 다른 화풍을 보여줬던 두 화가를 다룬 이야기. 작가는 실존인물인 홍도와 윤복, 그리고 그들이 남긴 그림들에 작가적인 상상력을 듬뿍 담았다. 하나하나 따지면 매력적인 소재들만 골라 차용한 듯 하다. 두 천재화가의 라이벌 구도, 틀에 박힌 형식을 거부하는 도전적인 인물들의 성향, 초월적 임금으로 불리고자 했던 개혁군주 정조, 그리고 사도세자의 어진과 관련된 살인사건.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새롭게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 그림 수집을 호사로 누리는 사대부들. 거기에 김홍도와 신윤복 두 화가의 예인으로서의 삶까지. 이미 알려진 역사적인 소재들에 이야기를 붙여 그것이 마치 역사적인 사실인 것 마냥 이야기를 전개한 건 작가의 상상력 덕분이다. 실존하는 그림들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작가가 의도한대로 이야기를 짜 맞춰 가는 식이다. 읽고나서는 진실은 무엇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궁금해지지만 읽는 동안 만큼은 정말 즐거웠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매력적인 그림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그림들에 얽힌 작가가 지어낸 사연들과 소설속 인물들을 통해 전해지는 그림에 대한 해석은 교과서에 관련자료로 나왔을 뿐인 익숙한 그림들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염려가 되는 건 소설속의 그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고스란히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돼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림들에 고정관념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거다. 작가가 너무 능글맞게 얘기를 잘 풀어가서 읽는 동안은 비판없이 해석을 받아들이게 된다.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적인 요소와 두 천재화원이 사건을 파헤친다는 설정은 흥미를 끄는 부분이지만 이 책에서 잘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극명하다고 생각된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실존 그림에 담긴 그럴싸한 이야기는 번뜩이고 가장 재밌는 부분이었지만 10년 전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작가의 역량이 좀 부족한듯 싶다. 여러 사건들이 중첩적으로 겹치다 보니 살인사건의 해결과정은 두루뭉술 전개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허전하달까? 특히 나중에 윤복의 입을 통해 잡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자객의 부분은 당황스러웠다. 언제 잡힌 거지?

반전이라고 해서 살인사건에 얽힌 반전만 기대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당했다고 느꼈으니 읽으면서 정신을 쏙 빼놓긴 했나 보다. 책에 실린 풍성한 오리지날 컬러도판, 그리고 파격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인물설정, 실감나는 그림 해석. 사실 이 정도면 잘 된 역사추리소설로 추천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림들에 담긴 작가의 해석에 모두 수긍이 가는 것도 아니었고 각권당 만원씩 얇은분량의 두께를 두권으로 분권한 건 과한 편집이라고 생각된다. (도판을 많이 실어서 여기저기 줄 게 많았나?)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