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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7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2)

어쩐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가파른 언덕에 앉아 탁트인 바다를 보며 맥주 한잔을 하는 기분은 쓸쓸한 듯 하면서도 낭만적이기도 하고 또 왠지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앉아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 나에게 벌을 준다고 꼼짝도 하지 말고 그렇게 앉아있으라고 하면 나는 오히려 기꺼이 그 즐거운 벌을 받고 싶다. 오히려 몇시간이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그렇게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이 온전히 주어진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가만히 누워서 하늘과 바다의 수평선이 맞닿은 그 곳을 바라보며 그 제목처럼 바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면 더없는 낭만적인 시간이 되지 않을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나"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기분전한을 위해 마시는 맥주 한잔과 음악, 그리고 가까이 보이는 바다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역시나 하루키 소설답다.

 

하루키가 쓴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꼭대기 자리를 어김없이 차지한다. 선인세 (10억+a)라는 미친가격에 거래되는 인기작가가 아닌가. 지금 서점에서는 하루키의 신작 1Q84를 매대에 쌓아놓고 불티나게 팔고 있다. 상실의 시대 이후 하루키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책만 냈다 하면 대히트를 치는 인기작가다. 일본소설의 가벼운 터치감을 흔히 "하루키스럽다"라는 말로 대신할 정도로 그의 이름은 하나의 명명성을 가진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을 정도다. 하루키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요즘 나오는 하루키의 소설들에 비하면 별로 특징적일 게 없는 밋밋한 이야기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대학생 "나"가 방학동안에 이런저런 소일을 하면서 보낸 스케치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의 띠지에는 이 책을 읽어보면 하루키 소설의 원형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루키 소설의 원류를 알아야 원류를 찾기라도 할 텐데 안타깝게도 난 그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완벽한 문장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절망도 없다던 젊은 날의 하루키의 가치관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는 낮에는 재즈바를 운영하고 늦은 밤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내며 그가 "나"의 손을 빌어 고백한 내용은 요즘 내가 고민있는 부분과 닿아 있어서 감정적으로 크게 공감이 갔다. "다양한 사람이 찾아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마치 다리를 건너듯 발소리를 내며 내 위를 지나가고 나서는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나는 이십대의 마지막 해를 맞았다." (P.10)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들, 내가 앞으로 알게 될 사람들... 1년 뒤의 내 주변 10년 뒤의 내 주변은 지금의 내 주변과는 많이 달라져 있겠지. 20대를 보내고 있는 내가 느끼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참 많은 질문과 고민을 던져다 주는 저 문장에 한참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하지만 역시 별 수 없잖아. "Que Sera, Sera!" 마인드로 그 고민 잠시 접어놨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하루키의 소설을 단 한권도 재미없게 읽어본 적이 없다. 그의 이야기는 재밌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음악 얘기도 흥미롭고 각자의 문학적 취향도 귀기울여 들여볼만 하다. 하루키의 디테일한 섬세함이 좋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른다. 그가 젊은 날 들었던 음악들을 소설 속에 쏟아낸다. 등장인물 누가됐던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대한 나름의 호불호가 명확하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 흘러나왔다면 이 소설에서는 캘리포니아 걸(California Girl)이 흘러 나온다. 그의 주인공들은 음악을 듣고 문학을 논하고 위스키를 마신다. 바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독특하다 여겨지는 사연을 별거 아니란 듯이 웃어 넘긴다. 때론 바보같을 정도로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공상을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 그런 허무맹랑한 내뱉음 속에서 세상에 대한 씁쓸한 체념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 잠시 알았던 사람들은 추억에 남겨 두고 아주 가끔 그 시절을 술안주로 삼기도 하겠지. 어쩌다 가끔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에 베란다에 홀로 나와 담배 한모금을 뻐끔거리며 꺼져가는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불현듯 옛생각을 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겠지. 그런 게 사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 똑같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두렵지 않았고 뭐든 하기만 하면 내 뜻대로 될 것 같았던 치기를 품었던 그때를 지나왔으니. 그 시절을 지나왔다고 해서 지나고 있다고 해서 전혀 슬퍼하거나 공허해하지 말라고. "나"는 그 시절을 지금 이야기로 남기려 하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냉장고를 뒤지며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글밖에 쓰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고백한다. 글쓰는 건 즐거운 작업이라고. 삶이 힘든 거에 비하면 글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너무 간단한 일이라고.  "나"의 수줍은 고백에 화답하자면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담백했으며 그가 뻔뻔스럽게 등장시킨 하트필드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능청스러울 수는 없었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