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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4 다잉 인사이드 * 로버트 실버버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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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시험기간이 되면 나의 자리는 4번째줄 가장 뒷자리였다.(번호순대로 앉기에..) 나는 시험시간에 주관식 답이 잘 생각이 안 나면 내 앞으로 보이는 학우들의 뒷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럼 신기하게도 답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지는 못했지만 뒷통수를 바라보며 간절히 애원하는 나의 다급한 목소리를 누군가가 들으시고 나에게 답을 알려준 건지도 모를 일. (어쨌든 이 일은 나의 개인적인 미스터리다.) 동전으로 홀짝을 알아맞춰야 할 때,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피같은 돈들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척들과 원카드를 할 때도 내 옆사람이 조커를 들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성급하게 “원카드”를 외치는 바보같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주옥같은 아쉬움들이 스쳐 지나가는구나.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은 적은 없지만 알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가끔 느낀다.

'다잉 인사이드'는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던 한 남자의 외로운 이야기다.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데이비드 셀리그는 다른 사람이 진실을 말하기 전에 그의 모든 걸 알 수 있었고 4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셀리그는 그런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런 그가 서서히 그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셀리그는 그런 자신을 보며 한편으로는 홀가분 하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영화에서 만나 본 내가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들 몇 명이 떠오른다. 거미인간 이웃 스파이더맨씨, 하늘을 날 수 있고 눈에서 아이스광선이 나오는 꽃미남 슈퍼맨. 그 外 수고해 주시는 여러'맨'아저씨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특별한 능력을 남을 위해 살아가야하는 영웅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인다. 공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는 팔자들이다. 단지 좀 특별하다는 이유 때문에.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엠제이를 구하고 나서 당신은 대체 누구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다정한 이웃'이라는 바보같은 말을 하며 모르는 척 해야했고 슈퍼맨 겸 신문기자인 클라크는 사랑하는 루이스에게 아직까지도 "내가 너를 안고 메트로폴리스 한 바퀴 돌게 해준 그 슈퍼맨이야!"라고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런 슈퍼히어로들 못지 않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셀리그지만 이들과는 좀 다르다. 그는 특별한 능력을 오직 그를 위해서만 사용하며 어떻게 해서든 그 능력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사람을 잃어가고 점점 혼자가 되는 그를 보며 연민에서 우러나오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게 더 현실적인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하다라는 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니깐.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눈에 띄는 활약을 해야되는 건 아니니까. 남을 위해 능력을 써야하는 건 더더욱 아니니까. 내가 믿었던 사람이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셀리그에게는 통할 수 없는 말이기에 그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인간'이다.

'특별함'에 대해 말하는 책이지만 역설적으로 평범함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특별하다라는 건 평범함 속에서는 때로는 '특이하다'라고 엉뚱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점점 외로워지는 캐릭터인 데이비드 셀리그는 왠지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과 흡사했다. 셀리그가 어떤 사람일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폴 오스터 책 속의 그들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다잉 인사이드'는 잘 쓰여진 소설이었지만 재미가 있다거나 흥미진진한 소설이기 보다는 딱딱하고 우울함이 깔려있는 시니컬한 느낌의 소설이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