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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5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 랄프 이자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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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남매인 제시카와 올리버가 사는 집에 어느 날 경찰들이 찾아온다. 박물관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전시되어 있던 황동상을 훔쳐 간 용의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매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매는 아버지가 일했던 박물관에 잠입하고 그곳에서 크바시나 왕국에 대해 알게 된다. 올리버는 누나 제시카의 도움으로 박물관에 있는 이슈타르 문을 통해 잃어버린 기억들이 가는 그 곳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데..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은 크바시나 왕국의 존재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과 선택받지 못한 잊혀진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건 퍽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신화적인 존재, 사람들이 사용하다 잃어버린 물건들, 역사 속 숨은 조연들이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곳. 그곳에서 올리버는 아버지를 찾아 모험하는 동안 왕국의 선량한 기억들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절대로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건망증과는 별개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맞춰지지 않는 퍼즐들, 바로 그런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이 가는 왕국이 있다는 건 신기한 설정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많은 인간의 단편적인 꿈들이 생명을 얻어 숨쉬는 크바시나 왕국같은 곳이 정말 있을까. 인간에게서 기억을 빼앗아간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될 수 있을까. 기억 안에는 추억도, 과거의 소중했던 인연도 함께 간직돼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을 수 없다면 인간에게는 희망, 기쁨, 설렘, 슬픔, 아픔, 아니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겠지. 꿈을 먹고 사는 인간 아닌가.  

이 책은 기억과 함께 역사의 이야기도 하고 있다. 고고학적인 미스터리라는 건 사실, 기억될 역사만을 선택해서 기록한 인간이 만들어 낸 숙제다. 누군가가 그 역사를 기록하고 확실히 전해졌다면 오늘날 인류에게 수수께끼로 남은 많은 역사적 미스터리는 그 수가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라는 건 선택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는 잘난 역사들의 집합체다. 역사가들의 주관적인 가치로 선택된 과거의 어떤 일부분만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은 반대로 선택받지 못했던 나머지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다. 크바시나 왕국의 생명체들은 현실세계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게 되는 최후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는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했지만 역사의 어떤 페이지에도 실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크바시나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곳이 고대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거가 잠들어 있는 곳, 과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 바로 그런 박물관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한다면 판타지 소설의 옷을 입고 있는 이 책이 담고 있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끄집어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술술 읽히는 판타지 이야기다. 고대 바빌론이 나오고 고고학적으로 구미가 당기는 여러 신화적인 소재들이 수수께끼를 연결하는 열쇠의 역할을 한다. 주인공 남매가 주변의 도움을 얻어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은 이런 동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꿈을 키우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의 큰 장점이 아닐까. 판타지 소설은 자칫 상상력과 허구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소설이 갖춰야 할 서사적인 내러티브가 헐겁게 느껴질 수가 있는데 다행히도 랄프 이자우의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은 탄탄하고 재밌는 내용 전개를 보여준다.

과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건 앞으로 또 다른 비극을 낳게 될 씨앗을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인간 역사라는 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어떤 패턴에 감겨 있는 것 같다. 소설 속에서처럼 '안네의 일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시간낭비에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우리는 가까운 어떤 나라를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당당한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손들에게 우리는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피해국가라는 의식을 심어주면서도 정작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우리 손으로 없애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떤 건물들은 과거의 치욕스러웠던 약소국의 흔적이라고 철거되고 방치되고 있다. 그중에는 기억하고 곱씹어야 할 역사의 산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들도 있었을 텐데.

북꼼 1월 문학동 서평 도서 (1권만 읽고 감상 씀)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