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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2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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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이제 막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받을 아이는 놀랍게도 바로 자신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아이는 조금 전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도망치듯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른 아침의 도서관은 텅비어 있었다. 창가 쪽의 구석자리에 앉은 아이는 특별한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도서관에 오기 훨씬 전에 버스가 지나갔던 어느 고등학교 앞에서 그 아이는 내려야 했다. 그날은 그 아이가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삼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던, '수능날'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리지 않았다. 내릴 수 없었다. 버스 안에서 얼굴을 파묻고 주변을 외면했다. 지난 2년간의 기억이 쓰라리게, 그러나 너무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스쳐지나갔다.

그 아이가 자신에게 편지를 써야만 했던 이유는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얘기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누군가와 연결돼 있지 않았다. 재수를 결심한 그 아이는 졸업을 하고 나서 의도적으로 자신과 연결돼 있는 관계들을 끊었다. 이기적인 아이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오만하게 착각했었다. 한동안은 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자유로운 거라고 느꼈다. 친구들은 방학 때 만나면 된다고 여겼다. 아이를 잊지 않고 걱정해주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그렇게 애틋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이었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재수를 실패하고, 조금 지난 후 주변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됐다. 점점 느슨해진 관계는 어느 순간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 그 후, 활발하고 살가왔던 아이는 반항 한번 안 했던 부모에게 독을 품고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방황의 시작이었다. 무늬만 삼수생이었던 아이는 가방에 책 한권 달랑 싸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저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만 느껴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외로움은 더 깊어져 갔다. 아이는 점점 안에서 병들어 갔다. 썩은 정신을 갖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 했다. 그리고 그 해 수능날 아침, 아이는 그 책상에 다시 앉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다. 편지를 쓰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떠올려 본다. 지쳐서 축 늘어진 어깨, 초라한 뒷모습. 그날 아이는 지난 2년간의 쓸쓸한 시간들에 진심으로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아이를 생각했다. 혼자였지만 혼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아이.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도 '존재'하고 있다고 외치지 못했던 지독한 외톨이였던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은 나는 이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나는 저 아이를 아직 놔주지 못했나보다. 하지만 전보다 많이 담담해졌다. 예전에는 저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조금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시 감정이입이 돼서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저 아이는 이제는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빛이 조금 바랬음을 실감한다. 내가 지나온 삶의 어느날을 기억해주고 말해줄 누군가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정민'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 혼자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이제는 오만한 생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믿을 수 없는 불행 속에서 외로움을 끌어 안고 살았던 이길용은 누구도 예상 못한 방향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 갔다. 시대의 불행과 개인의 불행이 꼭 맞아 들어갔던 '나'의 할아버지와 정민의 '삼촌, 그리고 이길용의 이야기를 통해 암울했던 시기의 그늘 속에서 '폭력'으로 영혼이 짓밟힌 시대의 희생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짓이기고 쓰디 쓴 고통을 맛봐도 질긴 생을 이어나가며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행복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이 고통스럽다 여겨질 때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세상 한구석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 안으로 깊게 침잠하려 하지만 그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게 아니다. 희망을 기약하기 힘든 절망 속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 과정은 퍽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저런 관계로 맺어진 여러 존재들에 대해 당연하다는 생각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무엇하나 '저절로' 있는 건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식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려하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라도 돌아본다. 알아서 뒤따라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다. 나의 '삶'이 타인을 통해 회고되는 것도 꽤 인상적인 경험이다. 나와의 추억을 얘기해주는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그 아이는 오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예전에 자신에게 썼던 편지를 다시 꺼내봤다고 한다. 하도 많이 읽어서 꼬깃꼬깃 손때가 묻은 편지에는 치기어린 후회와 격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담겨 있었다고. 그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방안 어딘가에 다시 편지를 숨겼다.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소중한 편지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정말 힘들고 아팠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편지가 아닌가. 그때 왜 그랬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저 아이는 대답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잘 알면서 왜 그러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더라고.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편지는 쓰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고 한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