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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2 남한산성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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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 명은 그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즈음 만주에서 여진족이 세운 나라 후금은 쇠퇴하는 명을 정복하고 조선에 사대를 요구한다. 선조 이후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쇠락하는 명의 편을 들자니 후금이 조선을 칠 것이 너무 뻔해 보였다. 하지만 어리석은 서인들은 이런 임금을 반역자라 했다. 진정 민족의 반역자는 누구일까. 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한 명의 군대는 조선 백성들을 도륙하고 부녀자를 능욕했다. 조선 백성의 목을 베어 왜군을 베었다고 거짓 공훈을 올렸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대신 광해군과 북인 출신 의병장들은 명의 군대가 남긴 폐해를 수습하고 왜군과 싸우는데 힘을 쏟는다. 7년동안의 전쟁에 이골이 났을 것이다.

후금의 사대요구에 광해군과 북인은 중립외교를 선택한다. 그 누구보다 전쟁의 폐해를 잘 알았던 임금이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싸워본 사람만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았을 것이다. 명을 아버지라 섬기던 서인들에게 광해군과 북인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은 능양군(후에 인조)을 앞세워 광해군과 북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후금은 계속되는 사대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조선에 마침내 칼을 들었다. 첫번째가 정묘호란이었고 후에 병자년에 다시 한번 조선에 쳐들어온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강화도로 향하다가 도중에 청의 군대에 앞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간다. 전세는 기울대로 기운 상태에 기약없는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남한산성'은 바로 그 병자년에 남한산성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김훈 특유의 날카롭고 곧은 문체로 호란 당시 조선의 정세와 조선군과 청군의 대립, 그리고 피난간 조정 안에서의 대신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주전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갈등. 청을 섬기는 것은 명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여겼던 대다수의 서인들과 유약한 임금 인조가 진정으로 걱정했던 것은 백성들이 아니었다. 예전같지 못할 권력이었다. 임금은 자리가 위태로워 몸을 사렸고 서인은 배금을 주장했기 때문에 몸을 사렸다. 청의 군대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백성들을 그들은 살피지 않았다.

사실 소설에서 인조는 어떤 임금이다라고 정의내릴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게 그려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자애롭게 보일 때도 있고 또 어떤 데서는 한량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아는 인조는 훌륭한 성군은 아니었다.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에 얽힌 뒷이야기도 그렇고 다 늙어서 15세의 꽃다운 어린 부인을 얻었다는 것도 그렇고 맹목적으로 서인과 함께 명에 사대하다 결국 백성과 조선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임금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이 특별하게 생각되는 이유는 벼랑 끝에 몰린 패자 조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처럼 병자호란 때 조선은 청에 무릎을 꿇었다. 조선의 임금 인조는 청의 칸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했다. 세번 절하고 9번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인데 실록에는 유하게 표현돼 있지만 청에 대한 괘씸죄까지 더해져서 인조는 이마를 땅에 9번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짓이겼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심한 얘기로는 삼전도 10리 밖에서부터 청의 칸의 명령으로 임금과 세자가 무릎을 꿇고 기어갔다는 얘기도 있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에 비해 책에서는 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양 진영을 오갔던 외교서찰만이 날카롭게 써져있을 뿐이다. 소리없는 기싸움만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주전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갈등, 조정대신들과 일반백성들과의 갈등, 탈출하여 항복하려는 자와 어떻게 해서든 싸워보려는 자와의 갈등, 청의 칸의 고민과 조선임금 인조의 고뇌가 있었다. 긴 조선역사 중 가장 치욕스러웠던 역사 속 사건이 김훈 특유의 유려하고 차갑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쓰여있다. 치욕스러운 부분부분은 바로 그 문장으로 날카롭게 쳐내고 생략해 놓았지만 김훈의 문장은 문학적으로 본받고 싶을 정도로 독특했고 섬세했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