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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3 나이팅게일의 침묵 * 가이도 다케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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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혼절을 거듭하는 사촌을 부축하느라 중환자실에서 함께 있었다. 가족들이 지켜봐야 하는데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을 걱정한 친척어른들이 나에게 중환자실에서 사촌과 함께 있으라고 언명했다. 불과 몇 초전까지 숨을 쉬었던 사람의 '최후'를 지켜보는 건 준비 안 된 나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이제는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의 피를 거칠게 닦아내고 몸에 부착되었던 거추장스러웠던 선들을 떼어 내고 더러워진 환자복을 갈아입히는 병원 의료진의 모습이 내 눈에는 조금 냉정하게 보였다. 큰아버지를 보낼 수 없다 울부짖는 큰엄마의 모습, 말 없이 눈물을 훔치던 사촌동생, 큰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을 잠시 잃었던 사촌. 커튼 뒤로 보여지는 중환자실 한가운데에 있는 의료진들 책상에서 들려오는 소곤소곤 대화들. 큰아버지의 병세를 무척 긍정적으로 얘기했다가 일이 이렇게 되니 실은 입원할 때부터 가망이 없었다고 말하는 의료진. 나는 그때 병원을 원망하고 있었다.


중환자실 의료진들에게는 일상인 것들이 나에게는 서운하게 비췄었다. 중환자실 면회여부를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던지는 농밀한 농담들도 내 귀에는 그저 무례하게 들렸었다. 갑작스런 현실에 마음이 퉁명스러워졌기 때문이었을까. 일을 하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감정이 없는 듯한 서운함이 느껴졌었다. 이런 곳이라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 내가 받은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인상이 이렇다.

작가의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재밌게 읽었었다. '대학병원'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다룬 의학미스터리 소설. 어리버리하고 피를 두려워하는 의사 다구치와 조금 못미덥지만 자뻑기질이 있는 시라토리의 활약은 낯이 익은 캐릭터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 이야기였다.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결말쯤 가서 보여지는 어른들의 방식을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일본인들과의 정서차이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저들이 보이는 행태는 차치하고서라도 죽음을 대하는 것에서 냉정할 정도로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잔혹한 내용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무조건 옳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같은 경우는 죽어서 그런 대우를 당할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에 아무렇지 않게 임할 수 있는 저들의 방식이 무서웠다. 이런 싸이코패스들을 그럴 수 있지라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을 정서적인 차이로 봐야할지 작가가 의사이기 때문에 느끼는 초연함과의 차이라고 봐야할지.

아버지를 잃은 천붕지통의 고통을 겪었던 사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일까. 그래도 낳아준 부모인데 증오하며 보내는 무감정한 말들과 잔혹한 방식의 복수, 그것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무감각한 세태가 조금은 두렵다. 나의 완소드라마 CSI 부검장면도 김밥을 먹으면서 볼 정도로 비위가 강한 나지만 이 책의 내용과의 정서적인 괴리와 맞물려 이어지는 행위들은 조금 역겹게 느껴졌다. 훼손할 수 있는 게 따로있지.  

불편한 내용들에 조금 기분은 상했지만 현직의사로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작가는 능숙함도 엿보인다. 병원의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에 던지는 유연한 사고의 문제의식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소아과 의사가 줄어든 것은 의료 행정이 소아과를 냉대해 온 결과다. 궁지에 몰리면 소아과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넘어가려 한다. -중략-  어린이와 의료를 경시하는 사회에 미래 따위는 없다." 현직에 있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제기하는 일련의 문제들은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도 잘 나가는 과의 의사는 돈방석에 앉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의사들은 고소득직종이라는 그늘 아래 빚만 지고 폐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어디에나 돈이 몰리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한직이라는 곳이 있다.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개원을 해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과는 정해져 있다. 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내용 중에 일본에서는 문을 닫는 산부인과들이 늘고 있어서 산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상황은 우리나라도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환자가 몰리는 곳은 성업중이고 그렇지 않은 곳은 문을 닫는다. 상업성과 맞물려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바뀌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피부로 와닿지 않겠지만 어느 분야든 시장논리를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현정부의 마인드가 앞으로 조금 더 구체화 된다면 경제성과 상업성 앞에 병원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느끼게 될 거다. 여론이 불리해 속마음을 숨 죽이고 있는지도.

덧. 이 책을 지금이 아닌 다른 때에 읽었더라면 어쩌면 재밌게 읽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가독성 있는 구성과 책의 판형 꼼꼼한 편집이 마음에 드는 시리즈니까. 하지만 시기가 안 좋았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