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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7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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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만난 나의 중1때 짝꿍녀석은 나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예전보다 더 엉뚱해진 친구는 자기 교수가 해준 얘기가 있는데 아픔이 느껴질 때마다 눈을 감고 가만히 그 아픔을 느껴보라고 충고해줬다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플 때 가만히 눈을 감고 그 통증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덜 아프게 된다고. 그리고 실제로 느끼지는 고통이 실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은 통증이고 견딜만한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해줬다는 것이다. 이 엉뚱한 얘기를 들었을 때는 물론 실컷 비웃어줬지만 나중에 친구의 말대로 한번 그렇게 해보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친구가 체험한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만히 명상하듯이 눈을 감고 통증을 느끼니까 생각보다 별거 아닌 아픔이었다. 녀석의 말처럼 몸이 주는 통증과는 오롯이 마주할 수 있지만 마음이 느끼는 아픔과는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 걸까.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별거 아닌거야 그러면서 놓여날 수 있으면 얼마나 속시원할까.

부모님께는 조금 서운한 얘기가 되겠지만 나는 죽음은 두렵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사는 게 두렵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제로 내가 두려운 건 점점 카운트되는 숫자가 아니라 '어른'이 되면 마땅히 해야할 사회적인 관습들과 가까이 마주하게 되는 게 두렵다. 직업을 구해야 하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어쩌면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자연스럽다 여기는 이 모든 게 나는 그저 두렵기만 하다. 조금 다르게 어른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아니 꼭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처럼 고결한 몸도 아니고 이 한몸 타락할까 두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두려운 것은...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이러한 관습들과 정면으로 마주할 조건도 자격도 준비도 평생 갖추지 못한 인간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게 두려운 것이다. 도망쳐봤자 세월의 손바닥 안일 것만 같다.

1900년대의 일본을 살아간 다이스케라는 인물은 2008년의 오늘을 사는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뛰어넘어 비슷하게 사고하는 인간과 마주한다는 건 인상적인 경험이면서도 꽤 씁쓸한 경험이기도 하다. 물론 난 다이스케처럼 내면적인 성찰도 근거도 갖고 있지 못하다. 빈약한 나의 변명과 천성적인 게으름은 다이스케가 주장하는 단단한 사고의 근거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그도 나처럼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이스케는 타락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외부의 강제적인 외압으로 이뤄지는 결과들을 온몸으로 거부한다. 하지만 이런 단단하고 우월감 드높은 나르시시즘적인 그에게서 어쩐지 '말'뿐인 인간의 냄새가 난다. 직업을 구하길 거부하면서도, 어른의 의식적, 도덕적인 타락을 두려워 하면서도 그 타락의 댓가로 벌어들인 부모의 돈으로 살아간다. 건강한 노동을 타락과 결부짓는 다이스케는 조금은 모순적인 인간이다. 그를 찾아온 지인들에게 속편하게 앉아서 목적과 수단사이에서 무엇을 우선에 놓어야 하는지 떠보기만 하는 고생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그런데 그가 사랑에 빠졌다. 참 뒤늦은 꺠달음. 사회적인 관습과 강제적인 설득과 명령에 꿋꿋했던 책상물림이 소극적이게도 우유부단했던 과거의 일로 인해 어느날 문득, 도통 그 속을 모르겠는 내면의 진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일생일대의 결정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딱 여기까지다. 이 이야기는. 그리고 '그 후' 다이스케는 어떤 결정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혹시 후회는 하지 않는지. 그렇게 신중했으면서 혹 그 신중했던 생각의 결과가 되려 독이 되지는 않았을지 그 다음 이야기를 몹시 궁금하게 만들며 딱 거기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한 인간의 고독한 사색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 후>는 절의 처마에 걸려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바람부는 대로 잔잔하게 몸을 맡기다가 어쩌다 쟁쟁하게 울림 소리를 내는 풍경같은 이야기.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