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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7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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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체능 쪽으로는 재능도 흥미도 없었던 학창시절에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감상문을 써오는 것이었다. 눈만 감으면 꿈나라로 가기 바빴던 나에게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보라고 아무렇지 않게 권했던 여러 음악선생님들이 그래서 이해가 잘 안 갔나보다. 뭐라도 느끼고 들은 게 있어야 감상이라는 것을 쓸 텐데 느낀 것도 없고 잠자느라 제대로 듣지도 못해서 감상문에 대한 수행평가점수는 매번 최하점을 받았었다. 기말고사 때 선생님이 나눠준 쪽집게 프린트물을 겨우 외워서 '우'는 간신히 받을 수 있었지만.


하지만 음악시간보다 더 지겹고 귀찮기만 했던 시간은 다름아닌 미술시간이었다. 준비성도 철저하지 못한 성격에 꼬박꼬박 미술준비물을 챙겨가야 한다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 없었다. 배운 적도 없는 드로잉으로 수행평가를 했을 때는 미술 잘하는 친구에게 대신 그려달라고 했었고 붓글씨는 연필로 그려서 붓으로 색칠했다. 화선지를 뒤집어 보면 연필로 그렸는지 표가 다 나는데. 어쨌든 점수보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무사히 넘기는 거였다. 나에게 예체능은 지루한 과목들 중에 가장 상위에 랭크돼 있는 과목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관심있는 화가가 있었으니 그 유명한 '고흐'다. 난 고흐라는 사람이 내가 막연하게 느꼈던 예술가의 고단한 인생의 전형을 살다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흐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난 이런 화가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있고 재밌다. 왜 그는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왜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하는 그림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화가의 발자취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다.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라는 책은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이었다. 저자 박누리가 싸이월드 페이퍼에 올린 글들을 책으로 엮은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그림에 대한 지식과 역사적인 뒷이야기까지 곁들여져 제대로 알지 못했던 화가의 뒷이야기를 풍성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녀가 평소 좋아하는 작품들에 대한 그녀 나름의 그림 감상을 풀어놓은 이 책은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는데 부담스럽지 않았다.

무언가를 감상하는 방법은 누구나 다르고 우리의 눈은 같은 걸 보고 있어도 서로 다른 걸 느낀다. 저자는 그림 자체에 대한 느낌보다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인생에 더 큰 애정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이는 무대 뒤의 조연들을 자신의 붓끝에 실었고 또 어떤 이는 평생을 살아온 홈타운에 마음을 바쳤다. 화려한 무대에서 웃음과 젊음을 판 무희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화가도 있었다.

난 여기에 실린 이 모든 이야기를 다 기억해두고 싶었다. 꼭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이 그림들을 실제로 보게 되는 흔치않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이런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미술이 어른이 되어서는 더 자세히 알고 싶고 더 많은 걸 보고 싶게 만들 줄은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