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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8 기나긴 이별 * 레이먼드 챈들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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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LA에서,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필립 말로는 어느 날 저녁 늦게 사무실 근처에서 술에 취해 경찰과 실랑이가 붙은 테리 레녹스를 만나게 되고 그를 경찰들에게서 떼어놓은 인연으로 그와 알게 된다. LA에서 알아주는 부자의 사위인 테리와 필립 말로는 짧게나마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테리의 아내 실비아가 처참하게 살해되면서 테리는 범인으로 몰려 쫓기게 된다. 필립 말로는 멕시코까지 테리가 무사히 도망치도록 도움을 주고 나중에 경찰에게 조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멕시코로 간 테리는 자살하고, 그즈음 유명소설가인 로저 웨이드 실종사건을 그의 아내인 아일린으로부터 의뢰받는데..

'기나긴 이별'은 필립 말로 시리즈로 번역된 작품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거나 필립 말로의 신변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이제 마흔이 넘은 필립 말로는 여전히 독신이고 혼자 외진 주택가에서 생활하며 식사는 주로 밖에서 해결하고 저녁에 일이 끝나면 바에 들러 혼자 김릿을 마신다. 겉모습은 외롭지만 필립 말로는 쓸쓸해 하지 않는다. 특별히 자주 만나는 사람도 없고 늘 혼자이지만 그는 현재에 만족한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하는, 그래서 자유롭고 망설이지 않는, 그런 필립 말로가 좋다. 이 시리즈를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그런 필립 말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말빨도 마음에 들고 솔직하면서도 냉소적인, 그렇지만 결국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그가 좋다.

'기나긴 이별'에서 활약하는 필립 말로는 의리파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가 보여준 모든 행동의 이유는 살인 누명을 쓰고 자살한 테리 레녹스의 억울함을 푸는 데 있었다. 테리와는 잠깐 만난 사이인데 그가 보여준 테리 레녹스에 대한 의리는 필립 말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필립 말로 사전에 억울함이란 있을 수 없다. 개운하지 못하게 일이 대충 마무리되는 걸 참지 못하는 필립 말로, 결국 주변의 협박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사건을 깨끗하게 마무리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는 내용이 박진감이 느껴진다거나 치밀한 짜임새를 보여주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리즈의 매력을 어디서 꼽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용보다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꼽고 싶다. 필립 말로도 고독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외로운 사람들이다. 부자이지만 사람과의 진정한 정을 나누지 않는 경계적인 인물들이다. 부부이지만 사랑이 깊지 않은 부부들도 등장하고,(←필립 말로와 만나게 된 부부들은 주로 헤어지거나 한쪽이 먼저 죽는다.^^;) 뭐하나 빠질 것 없는 배경을 갖었지만 혼자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 필립 말로도 고독하지만 그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 쓸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점이 이 소설 특유의 하드보일드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소설은 아름답고 따뜻한 내용은 아니다. 배신과 음모, 협박과 폭력이 등장하는 어두운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냉소적이면서 음울함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까? 또한 고독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씁쓸한 인간의 어두운 단면들을 보면서 信의 부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협박과 배신에 굴하지 않는 필립 말로의 멋진 활약을 볼 수 있다.

Posted by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