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심신이 고달파 블로그에 글을 올려볼 시간의 사치조차 없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들고 찢어지는 마음을 안고 하루를 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을 소리로나 들릴 삶에 대한 투정 따위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든 게 아닌 건 아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음울하고 멜랑꼴리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많은 나이도 아니고 적은 나이도 아닌 어중간한 20대 중반인데... 왜 이렇게 조바심이 바짝바짝 드는지. 지금 당장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과 그럴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4차원적인 괴리와 자책 때문에 심적으로 괴롭다.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왠지 그 가사가 처절하게 귀에 사무친다.
# 외할머니.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녀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가 어땠건 내가 태어난 이후로 할머니가 된 거다. 나의 탄생과 동시에 할머니가 된 그녀는 그때부터 젊지 않았던 거다. 할머니와 손녀라는 끈으로 묶여 있는 그녀와 나 사이의 관계 때문에 불행하게도 난 그녀의 젊은시절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스롯데"에도 나갔던 이모의 얼굴이 외할머니를 빼다박았으니 아마도 예쁜 이모의 얼굴이 젊었을 적 외할머니의 모습이었겠지. 불행히도(?) 우리 엄마는 할머니나 이모처럼 예쁘지 않다. 다행히도 난 엄마를 닮지 않고 남자치고는 곱상하게 생긴 울아버지를 닮았다. 고로 난 할머니와 닮은 데가 전혀 없다. 외모로 봤을 때도 전혀 다르게 생긴 울할머니를 난 사실 많이 좋아한다. 비록 여느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처럼 어여쁘고 애틋한 모습은 없어도 하지만 난 세상 누구보다 할머니가 좋다. 거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자라서 비록 할머니의 손을 많이 탄 손녀는 아니라고 해도 난 할머니의 손녀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고 우리 엄마도 없었다. 유독 병치레가 잦은 엄마를 낳았다는 마음에 늘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는 분이다. 하지만 인자한 눈웃음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며칠 전 외할머니가 다리가 많이 편찮으셔서 수술을 해야 될 거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난 아직 보여줄 게 없는데 아직 그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볼 거 없는데 이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면 어쩌나 싶어서 너무 막 안타까운 거다. 할머니한테 전화했더니 그 강했던 할머니가 자꾸 약한 소리를 한다. 심지어 울기까지 하셨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그런 호랑이 할머니가 우셨다. 무섭단다. 할머니가 너무 많이 약해졌다. 심적으로는 누구보다 강한 여인인데. 그 모진 세월 꿋꿋하게 견딘 분이신데. 굴곡진 삶 때문에 종교조차 멀리하셨던 분이 최근에는 교회에도 나가기 시작하셨다. 많이 약해지셨다는 얘기다. 얼마전에 보내드린 소정의 용돈도 엄마편으로 다시 돌려 보내셨다. 솔직히 쥐뿔도 가진 게 없는 나는 할머니와의 미래를 상상한다. 얼른 운전을 배워 울할머니의 발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랑 통화를 하면서 지팡이라도 사드려야하나 생각하다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또 눈물이 나왔다. 쥐뿔도 가진 게 없는 내가 너무 혐오스럽고 불쌍했다. 내가 커갈수록 내가 마음으로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늙어간다. 나이들어 몸이 아픈 건 당연한 것이라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주변의 얘기도 들었다. 그런 것이 삶의 당연한 귀결이라 하더라도 가족의 일을 어찌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생각할 수 있을까.
많은 나이도 아니고 적은 나이도 아닌 어중간한 20대 중반인데... 왜 이렇게 조바심이 바짝바짝 드는지. 지금 당장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과 그럴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4차원적인 괴리와 자책 때문에 심적으로 괴롭다.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왠지 그 가사가 처절하게 귀에 사무친다.
# 외할머니.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녀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가 어땠건 내가 태어난 이후로 할머니가 된 거다. 나의 탄생과 동시에 할머니가 된 그녀는 그때부터 젊지 않았던 거다. 할머니와 손녀라는 끈으로 묶여 있는 그녀와 나 사이의 관계 때문에 불행하게도 난 그녀의 젊은시절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스롯데"에도 나갔던 이모의 얼굴이 외할머니를 빼다박았으니 아마도 예쁜 이모의 얼굴이 젊었을 적 외할머니의 모습이었겠지. 불행히도(?) 우리 엄마는 할머니나 이모처럼 예쁘지 않다. 다행히도 난 엄마를 닮지 않고 남자치고는 곱상하게 생긴 울아버지를 닮았다. 고로 난 할머니와 닮은 데가 전혀 없다. 외모로 봤을 때도 전혀 다르게 생긴 울할머니를 난 사실 많이 좋아한다. 비록 여느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처럼 어여쁘고 애틋한 모습은 없어도 하지만 난 세상 누구보다 할머니가 좋다. 거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자라서 비록 할머니의 손을 많이 탄 손녀는 아니라고 해도 난 할머니의 손녀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고 우리 엄마도 없었다. 유독 병치레가 잦은 엄마를 낳았다는 마음에 늘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는 분이다. 하지만 인자한 눈웃음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며칠 전 외할머니가 다리가 많이 편찮으셔서 수술을 해야 될 거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난 아직 보여줄 게 없는데 아직 그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볼 거 없는데 이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면 어쩌나 싶어서 너무 막 안타까운 거다. 할머니한테 전화했더니 그 강했던 할머니가 자꾸 약한 소리를 한다. 심지어 울기까지 하셨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그런 호랑이 할머니가 우셨다. 무섭단다. 할머니가 너무 많이 약해졌다. 심적으로는 누구보다 강한 여인인데. 그 모진 세월 꿋꿋하게 견딘 분이신데. 굴곡진 삶 때문에 종교조차 멀리하셨던 분이 최근에는 교회에도 나가기 시작하셨다. 많이 약해지셨다는 얘기다. 얼마전에 보내드린 소정의 용돈도 엄마편으로 다시 돌려 보내셨다. 솔직히 쥐뿔도 가진 게 없는 나는 할머니와의 미래를 상상한다. 얼른 운전을 배워 울할머니의 발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랑 통화를 하면서 지팡이라도 사드려야하나 생각하다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또 눈물이 나왔다. 쥐뿔도 가진 게 없는 내가 너무 혐오스럽고 불쌍했다. 내가 커갈수록 내가 마음으로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늙어간다. 나이들어 몸이 아픈 건 당연한 것이라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주변의 얘기도 들었다. 그런 것이 삶의 당연한 귀결이라 하더라도 가족의 일을 어찌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생각할 수 있을까.
Scribble
2009/11/22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