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01


예전에 알바하던 곳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가끔 블로그에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던 유일하게 존경하는 어른인 보스와 함께) 근데 존경은 존경이고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어제는 정말정말 심적으로 힘든 날이었다. 5월1일부터 5일 어린이날까지 황금연휴다. 5월1일은 근로자의 날, 하지만 금요일 공식적으로 빨간날은 아니다. 주말을 위해 은행에서 잔돈을 뭉텅이로 바꿔놓는데... 아뿔싸. 은행이 쉴줄이야. 아침에 마이보스는 어떻게 해서든 1~3일 황금연휴를 대비해서 잔돈을 바꿔놓으라고 명했다. 은행이 문을 닫았다. 잔돈은 바꿔야 한다. 왜 근로자의 날 은행이 쉬는지 몰랐느냐고 쿠사리를 들었다. 빨간날도 아닌 평일에 은행이 쉴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500원짜리는 근처에 있는 영화관 오락실에서 바꾸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100원짜리다. 100원짜리를 어디서 구한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대학병원의 코인라커. 지하철역의 지폐교환기. 대형마트에 있는 동전교환기들이다. 쿠사리를 신나게 들었으니 어떻게서든 동전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동전들을 바꾸기 위한 무모한(?) 길을 떠났다. 동료에게 자전거까지 빌렸다. 문제는.... 내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 길을 전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지도까지 뽑아서 길을 찾아 갈 수밖에 없었다. 

H대형마트를 들렀다. 평소에 나라면 아마 절대 하지 못했을 행동을 했다. 기계들을 돌며 눈에 띄는 동전교환기에서 동전을 바꾸기 시작한 거다. 사실 정말 민망했다. 보안대에 서계시는 직원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도 느껴졌다. 근데... 근데... 정말 뻔뻔하게 그냥 바꿨다. 뻔뻔하게. 그 마트에서만 6000원을 잔돈으로 바꿨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e마트로 향하기 전 눈에 띄던 대학병원에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도 코인라커가 있는 데가 있으니까 혹시나 동전교환기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고 있는데 마이보스에게 전화가 왔다. 

"우체국은 문 열었다더라. 넌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냐."
"마트 돌면서 동전 바꾸고 있었어요."
"너 자꾸 주먹구구식으로 할래. 그런식으로 해서 언제 바꿀 건데. 우리가 주말에 동전만 30만~40만원이 도는 거 몰라? 여태까지 그거 하나 파악 못 했어?"
 
"...."


사실 난 지독하게 길치다. 보기보다 길을 많이 헷갈려한다. 이 사진들은 내가 관광목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아니다. 길 잃어버릴까봐 지나온 사거리들만 찍었다. 돌아갈 때 헤매지 않으려고.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보스랑 전화를 끊고 막 눈물이 나왔다. 막 억울하고 서러웠다. 자꾸 눈물이 나서 이대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 것 같아서 근처에 있는 시청공원에 앉아서 막 울었다.
 그렇다고 엉엉 운 건 아니고 그냥 눈에서 흐르는 눈물만 간신히 훔쳐내는 정도. 인쇄해 온 지도는 너무 화가 나서 꾸겨버렸다. 내가 이런 멍청한 짓을 왜 하고 있었을까. 보스는 왜 이런 건 알아주지 않고 자꾸 저렇게 쿠사리만 늘어놓을까. 빨간날도 아닌 평일인데 은행은 왜 문을 닫은 걸까. 게다가...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다. 주변에 꽃도 너무 예쁘게 피어있었다. 이렇게 날씨 좋은 날 난 왜 이렇게 서러운 걸까.




잠시 나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


꽃들이 너무 예쁘게 피었다.
그리고.......


난 이 동전들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구한 동전들인데...
X팔리게 왜 길 한복판에서 눈물이나 질질 짜고 있을까. 그냥 모든 게 자신이 없어진다.
난 어쩌면 이 모든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당분간 동전 뭉탱이만 보면 울 것만 같다. 훌쩍..ㅠ.ㅠ

결국 이날 하루종일 꿍한 표정에 急소심해진 내 모습을 눈치챈 보스와 회식(?)을 했다. 술자리에서 또 눈물이 나왔다. 나 이렇게 울보 아닌데... 결국 이번만 솔직해지겠다고 말하고 감히 이런 ↓ 말을 했다-_-; (미쳤;;;)
 중요한 건 맨정신에 이랬다는 거.

"사장님을 존경하지만 요즘은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사장님도 저한테 실망하셨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장님은 결과로 이어진 것만 노력으로 치고 나머지는 헛수고에 시간낭비로 보시잖아요. 사장님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헤아려 주시는 분인줄 알았어요. 블라블라~~~ㅠ.ㅠ 블라블라~~~ 오늘 제가 동전 바꿀라고
 훌쩍훌쩍.. 근데 우체국은 열었다고 늦게 말해주시고...
... " 

결국 보스가 상처를 받았다.orz...
 
그날 이후로 살짝 소심해진 보스를 볼 수 있었다.

요즘에는 그래서 지은 죄가 많아 근신하고 있다^^;;;
급얌전모드 ㅋㅋ 나름 묵묵(?)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ㅎㅎ
누구말대로 나라는 사람은 직장생활을 하면 상사 어려운줄 모르고 까불어대서 벌써 짤렸을 거라는 뼈에 사무치는 말을 다시금 곱씹게 했다.

그간에 일어난 일들을 나보다 인생경험 풍부하신 마이브라더에게 털어놨다. 브라더옹께서는 나에게 "누나. 원래 그렇게 하면서 느는 거야. 처음에 쓴소리 들어가면서 배워야 나중에 누나가 편하다니까. 대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혼나면 그건 구제불능인 거고" 참 당연한 얘기를 녀석에게 들으니까 느낌이 되게 남달랐다. 녀석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속없이 사는 것 같고. 무엇보다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고. 아무튼 요즘 그렇다

마빈
Scribble 2009/05/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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